목차

  1. 개요
  2. 서문
  3. 제1장. 삶과 유산 A life and its legacy
    1. 마르크스의 영향력
    2. 출생, 공부, 결혼
    3. 혁명적 사상들
    4. 런던에 정착하다Settling in London
    5. 제1인터네셔널과 <자본>의 출판The First International and the publication of Capital
    6. 마지막 십 년
  4. 제2장. 청년헤겔주의자The Young Hegelian
    1. 헤겔의 정신현상학
    2. 청년헤겔주의자가 재해석한 헤겔 이론
  5. 제3장. 신에서 돈으로From God to money
    1.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
    2. 경제로 눈을 돌리다
  6. 제4장. 프롤레타리아트Enter the proletariat
    1. 철학의 유물론적 무기
    2. 프롤레타리아트의 변증법적 역할
  7. 제5장. 첫번째 마르크스주의The first Marxism
    1. 경제학 비판
    2. 소외된 노동
    3.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중요성
  8. 제6장. 유물사관의 발전The development of the materialist theory of history
    1. 신성한 가족The Holy Family
    2. <포이어바흐에 대한 논제들>The <Theses on Feuerbach>
    3. 독일 이데올로기The German Ideology
  9. 제7장. 역사의 목표The goal of history
    1. 유물사관이 진정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2. 해석의 문제
    3. 과학적 발견인가
  10. 제8장. 경제학Economics
    1.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발전을 추적하기
    2. 잉여 가치
    3. <자본>
    4.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11. 제9장. 공산주의와 혁명Communism and revolution
    1. 혁명은 어떻게 달성되나
    2.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설명하길 주저함
    3. 공산주의에 대해 마르크스가 한 말들
    4. 마르크스의 윤리학
    5. 공산주의적 풍요abundance와 정부의 소멸withering away
  12. 제10장. 마르크스는 옳았나?Was Marx right?
  13. 제11장. 마르크스의 이론은 여전히 적절한가?Is Marx still relevant?
    1. 마르크스의 명성
    2. 불평등
    3. 세계화 시대의 마르크스
    4. 마르크스와 환경 위기
    5. ‘중요한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개요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이해하고 싶어서 피터 싱어Peter Singer가 쓴 <마르크스: 짧은 입문서Marx: A Very Short Introduction>를 읽었어요. 이 책의 초판은 1980년에 나왔고, “짧은 소개” 시리즈로 다시 나온건 2000년, 개정판은 2018년에 나왔습니다. 표지에 의하면 “완전히 바뀐fully updated” 개정판이라고 해요.

서문

마르크스는 1818년 5월 5일에 태어났어요. 이제 200년이 지났으니(개정판 출판일인 2018년 기준) 그를 재평가해보기 좋은 시기입니다. 20세기에 영향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물 간 19세기 철학자일까요, 다윈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여전히 유효한 무언가를 찾아낸 사람일까요, 아니면 그 사이 어디쯤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는게 이 책의 첫번째 목적입니다.

두번째 목적는 그의 핵심 사상들을 짧고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싱어는 그의 수많은 저작을 관통하는 비전을 일반 독자도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쓴 책이 여태 없었다고 말해요. 특히 개정판은 마르크스 사상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연구들도 반영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뒷부분에 피케티, 인공지능, 보편기본소득 같은 이야기들이 잠깐 나와요.

제1장. 삶과 유산 A life and its legacy

마르크스의 영향력

그는 예수나 무하마드에 비견됩니다. 20세기 후반, 전체 인구의 40%가 그의 사상을 따른다고 주장하는 국가에 살았고 이들 국가에서 그는 신성시되었으며 정치인들은 그의 사상을 자신의 주장과 유사하게 해석하려 노력했으며 패배자는 종교적 이단과 유사한 취급을 받았어요.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더라도 영향력이 지대했습니다. 보수/자유/사민주의 정부들은 마르스크주의 혁명을 막고자 복지제도를 도입했고, 무솔리니나 히틀러는 마르크스주의의 위협에 대한 효과적 반대자로 여겨졌기에 쉽게 보수 세력을 규합하고 권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해요. 미국 등 마르크스의 영향력이 거의 없던 국가 조차도 그의 영향력 하에 있는 경쟁 국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핑계로 인권을 제약하고 군비를 증액하고 다른 국가들을 전복하기 위해 내정 간섭을 하고 베트남전에 개입했습니다.

그의 사상은 사회와 계급 및 경제적 힘이 사회에 미치는 역할 등을 다룰 때 꼭 필요한 기반 중 하나가 되었으며, 역사학/사회학/철학/문학/예술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는 모두 마르크스주의자입니다.

출생, 공부, 결혼

마르크스는 1818년 독일 라인란트Rhineland에서 태어나요. (뀨: 라인란트는 라인강 서쪽, 독일과 벨기에 접경 지역). 모부 모두 유태계. 아버지는 1814년에 변호사가 되었으나 나폴레옹 패망 후 라인란트가 프랑스에서 프로이센 영역으로 바뀌며 유태인은 더이상 법률가를 할 수 없게 되었고 그로 인해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가족의 종교 및 정치관은 자유주의에 가까웠다고 해요.

17세에 본Bonn 대학에서 법학 공부 시작했으나, 술먹고 폭행하고 연애편지 쓰며 공부는 안하니 아버지가 더 진지한serious 대학인 베를린Berlin 대학으로 전학을 시켜요. 마르크스는 아버지의 뜻과 달리 철학으로 전공을 바꿨습니다. 아버지 돈 안받고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교수직을 노리며 논문을 썼어요. 논문 주제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투스와 에피쿠로스의 자연철학 비교. 그는 이 고대의 논쟁이 당대 정치철학 분야에 큰 영향력을 미치던 헤겔 사상의 해석과 관련있다고 보았습니다.

(뀨: 두 고대철학자는 모두 원자론자이자 유물론자였어요. 특히 에피쿠로스는 원자론으로 도덕과 행복 등을 설명하려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헤겔은 베를린 대학에서 오래 교수 생활을 하였으나 마르크스가 베를린 대학에 오기 10년 전에 별세합니다.)

1841년, 논문은 썼으나 교수직 오퍼는 못받았어요. 언론으로 관심사를 옮기고 신생언론 <레니시 가제트Rhenish Gazette>(뀨: 라인 지역 신문이라는 뜻)에 사회/정치/철학 관련 기고를 했는데, 많은 인기와 신임을 얻었고 1842년 22살 나이로 편집장이 됩니다. 신문사가 잘나가자 그의 글이 프로이센 정부의 이목을 끌었고 검열에 시달리다가 편집장 그만두게 됩니다.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정부의 탄압을 받는 와중에 7년된 약혼녀와 결혼도 해야하는 상황. 그런데 그 와중에 무직이라서 한가해졌다며 헤겔 법철학에 대한 비판적 연구를 시작해요. 그러다가 마침 신생 언론 <독일-프랑스 연보German–French Annals>의 공동편집장 제안을 받고 돈이 생깁니다. 파리로 이사가서 1843년에 결혼을 해요.

혁명적 사상들

마르크스는 파리에 가자마자 결혼한 배우자는 내버려두고 극단주의자, 사회주의자들과 어울리며 핵심사상을 키워나갑니다. 당시 파리는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의 성지였다고 해요. 새 언론사에 쓴 글들은 대중의 관심보다는 프로이센 정부의 관심을 더 받았고 프로이센 정부의 압박으로 언론사의 돈줄이 끊기고 결국 폐간합니다. 프로이센에서 그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되었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체포될 수 밖에 없는 정치적 망명자 신세가 됩니다. 하지만 예전에 편집장을 지냈던 언론사 <레니시 가제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던 덕에 마침 큰 돈이 들어왔어요.

1844년엔 그의 철학 사상을 정리하며 많은 시간을 보내요. 여기에서의 철학이란 정치, 경제, 역사 등을 아우르기에 광의의 철학입니다. 이 시기부터 그는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부르기 시작해요. 당시 파리에선 특이한 일은 아녔다고 해요.

엥겔스와도 이때 친분을 쌓게 됩니다. 엥겔스는 독일 기업가의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도 마르크스에게 영향을 줬던 독일 지식인 써클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공동 편집장으로 있던 <독일-프랑스 연보>에 글을 기고했는데 이 글은 마르크스의 경제 사상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러던 중 엥겔스가 파리에 방문했고 둘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됩니다. 이 둘은 마르크스의 첫 책인 <신성한 가족The holy family>을 함께 쓰며 친해져요.

프로이센 정부는 파리에 거주하는 독일인 공산주의자들을 좀 어떻게 해보라고 프랑스 정부를 압박했고, 결국 마르크스 가족(뀨: 이제 딸도 있어요)에게 추방 명령이 떨어집니다. 정치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벨기에 정부와 약속을 한 후에야 벨기에 입국이 허가되어 브뤼셀Brussels로 이사를 갔으나 가자마자 약속을 깨고 공산주의통신위원회(CCC)를 만들어 국제 서신 교환하며 3년 간 지냅니다. (뀨: 브뤼셀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있어요. 원래 프랑스에 속해 있다가 독일에 속했다가 1830년 이후 지금까지는 벨기에의 수도입니다. 현재 브뤼셀에는 NATO와 EU 본부가 있어요.)

후에 <자본Capital>이 될 책의 작업을 이 시기에 시작합니다. 원래는 1845년 출판을 목표로 계약했으나 마감을 어겨 파기되었고 선금만 받아먹었다고 해요. 엥겔스의 지원으로 마르크스 가족은 여유로운 생활을 합니다. 그 시이가 배우자는 둘째를 임신했으나 그 와중에 엥겔스와 함께 산업혁명을 공부하겠다며 둘이서만 잉글랜드에 여행을 갑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자본> 저술을 잠시 미루고 당대에 유행하던 경쟁 이론을 비판하는 책 <독일 이데올로기The German Ideology>를 먼저 내고자 하였으나,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하고 결국 출판하지 못해요. 이 책은 마르크스 사후인 1932년에야 출판됐습니다.

이 시기에 그는 잠재적 동료가 됐을지도 모를 프랑스 사회주의자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를 비판하며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싱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이 지닌 중요성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약간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으면 견디질 못했다고 해요.

1847년 겨울, 런던의 신생정당 공산주의자동맹Communist League에 참석하여 공산주의의 실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주장했고, 당에서는 그의 주장을 쉬운 말로 풀어 쓸 것을 요청합니다. 그 결과가 1848년 2월 출판된 <공산당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마르크스 이론의 고전적 개괄서로 간주됩니다. 하지만 전 유럽에 영향을 준 프랑스2월혁명과 겹치는 바람에 책이 바로 성공하진 못했어요. 혁명의 영향으로 새 프랑스 정부는 마르크스에 대한 추방 명령을 취소했고, 그는 파리, 베를린을 거쳐 다시 라인란트로 귀향해서 신문사 <새 레니시 가제트New Rhenish Gazette>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혁명이 흐지부지되고 프로이센 독재정이 재수립되는 바람에 다시 망명자 신세가 됩니다. 처음엔 파리로 가려 했으나 프랑스에서도 추방되었고, 결국 바다 건너 잉글랜드로 갑니다.

런던에 정착하다Settling in London

제대로 된 혁명이 일어나면 대륙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평생 런던에 살다가 별세해요. 배우자 제니는 브뤼셀 거주 당시 셋째를 낳고 현재 넷째를 임신 중인데, 마르크스는 그 와중에 공산주의자동맹 활동을 활발히 합니다.

엥겔스의 금전적 지원이 적지는 않았으나 마르크스 집안은 가난한 편이었다고 해요. 싱어는 지원 탓이 아니라 돈관리를 못한 탓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셋째가 8세에, 넷째가 출생 직후에, 새로 태어난 다섯째가 1년만에 죽는 등 불행한 가정사가 계속 됐다고 해요.

1852년부터 10년 동안은 <뉴욕 트리뷴New York Tribune>에 고정적으로 기고하며 형편이 나아졌다고 해요. 기고문 중 일부는 엥겔스가 마르크스 이름으로 대신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즈음에 배우자 제니가 상속을 받으며 형편이 더 나아져요. 이 당시 마르크스는 좋은 아버지였다고 합니다.

제1인터네셔널과 <자본>의 출판The First International and the publication of Capital

1857년부터 1858년 사이엔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어요. 6개월만에 800 페이지 분량의 <자본> 초고를 작성합니다. 이 초고는 최종본에 비해 더 넓은 분야를 다루고 있다고 해요. 1859년, 내용 중 일부를 추려서 <정치경제 비판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을 냈으나 주목받지 못했어요.

이 시기에 또다른 사건이 있었습니다. 좌파 정치인지자 편집인인 칼 포크트Karl Vogt가 프랑스 정부의 돈을 받고 있다고 고발했다가 송사에 휘말립니다. 결국 마르크스의 주장이 사실로 드러났으나 그 사이에 돈도 날리고 18개월 간 저술을 못하게 됐어요. 게다가 전국노동자연합(제1인터네셔널) 총회의원으로 선출되며 정치활동을 다시 시작하는 바람에 바빠지기도 합니다.

1867년에 드디어 <자본> 1판을 냈으나 처음엔 반응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해요. 엥겔스가 7개의 독일 신문에 서로 다른 리뷰를 보내는 등 ‘작업’을 했고 서서히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뀨: 엥겔스의 끝없는 사랑)

1871년, 노동자 폭동이 일어나 두 달 동안 파리를 점령한 일이 있었고, 제1인터네셔널이 폭동의 배후로 지목되며 마르크스도 명성(악명?)을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제1인터네셔널 배후설은 사실이 아녔어요.

그 후 제1인터네셔널은 힘을 잃고 이견을 가진 세력들이 부상합니다. 1872년 의회에서 마르크스는 자신이 장악력을 상실했음을 느낍니다. 마르크스의 제안에 따라 총회를 뉴욕으로 옮기기로 간신히 결정되었으나, 대륙 조직의 총회가 미국에서 열린다는 사실 자체가 조직의 해체나 마찬가지임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고 해요.

마지막 십 년

당시 마르크스는 54세이고 건강이 나빴습니다. 마지막 십 년은 조용하게 지낸 편이라고 해요. 큰 집에서 편히 살며 딸들을 교육시키고 여행도 다녔으며 심지어는 주식으로 돈도 벌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도 엥겔스에게는 계속 금전적 지원을 요청했고 엥겔스는 지원을 계속합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이 드디어 널리 퍼지기 시작해요. 러시아에서 유명세를 타며 1872년에는 러시아어 번역본이 나왔고, 그 직후엔 프랑스어 번역본이 나옵니다. 영어 번역본은 사후에 나와요. 유럽의 혁명과들과 의견을 나누며 2권 및 3권 작업에 매진했으나 완성하지 못했어요. 2권과 3권의 마무리 작업은 엥겔스가 이어 받아서 하게 됩니다. 원래는 4권도 예정되어 있었으나 작업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해요.

마르크스의 마지막 중요 저작은 1875년에 나옵니다.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 당들을 연합하고자 하는 시도가 있었는데(고타 강령the Gotha Programme),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 논의에 초대받지 못했어요. 분노한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조직의 미래에 대한 본인의 아이디어를 적은 <고타 강령 비판Critique of the Gotha Programme>을 리더들에게 배포합니다. 이 글은 당시엔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이후 재평가되었어요.

말년에 큰 명성을 얻었지만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손자녀들이 모두 단명하였고 1883년엔 배우자 제니도 별세해요. 마르크스 본인은 기관지염을 앓다가 1883년 3월 14일에 별세합니다.

제2장. 청년헤겔주의자The Young Hegelian

헤겔의 정신현상학

헤겔은 1818년부터 남은 여생(1831년 별세)을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로 지냅니다. (뀨: 마르크스는 1818년생이고 18세에 베를린 대학에 갔으니 헤겔의 강의를 직접 듣지는 못했어요.)

마르크스는 1837년에 헤겔의 <정신현상학The Phenomenology of Mind>을 읽고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 책이 “헤겔 철학의 진정한 탄생지이자 비밀”이라고 평가해요. 따라서 마르크스를 이해하려면 이 책에서 시작하는게 좋습니다.

독일어 geist는 mind 또는 spirit으로 번역해요. (뀨: 영어의 mind는 마음 또는 정신, spirit은 정신 또는 영혼) 헤겔은 이 단어로 세계universe의 영적spiritual 측면을 묘사합니다. 모든 의식있는 존재의 정신은 세계정신universal mind의 제한적 일부입니다. 헤겔이 말한 세계정신이 기독교적 신을 뜻하는지 범신론적 의미인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쟁이 있다고 해요.

헤겔 <정신현상학>의 주제는 세계정신의 전개development 입니다. 의식이지만 자의식도 없고 자유롭지도 않은 초기의 개별 정신에서 시작하여, 자유롭고 완전한 자의식이 있는 통합된 세계정신으로의 발전 과정을 서술해요. 이 과정은 순전히 역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 둘의 기묘한strange 조합으로 묘사됩니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란 단순히 사건들의 연쇄가 아니라 세계정신이 최종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할 논리적으로 필연적인 길을 따라 진보하는 과정입니다.

세계정신의 전개는 변증법적dialectical으로 진행됩니다. 마르크스의 철학은 보통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불리는데, 이 변증법적 요소가 바로 헤겔에서 유래해요. 헤겔 변증법을 잘 설명하는 지문은 주인-노예 관계를 설명하는 부분이며, 이 설명은 마르크스의 자본가-노동자 관계에 대한 견해에 반영됩니다. 주인-노예 관계에 대한 헤겔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각자가 세계정신의 일부임을 모르는 두 개인이 있다. 권력의 충돌이 있으니 서로를 라이벌로 여긴다. 이는 안정적 상태가 아니다. 결국 한 명이 다른 한 명을 지배하여 주종 관계가 성립되지만 이 또한 안정한 상태가 아니다. 왜냐하면 처음엔 주인이 모든걸 다 가지고 노예는 아무것도 가진게 없어 보이지만, 실제로 일을 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건 노예이기 때문이다. 노예는 이를 자각하기 시작하고 동시에 주인은 노예에 점점 의존적이게 된다. 궁극적 결과는 노예의 해방이자 초기의 두 개인 사이의 충돌 해소이다.

정신현상학은 이런 식으로 모순과 대립을 해소하며 전개되는 세계정신을 추적합니다. 세계정신은 본질적으로 보편적이지만 제한된 일부인 개개인의 정신은 이 보편성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스스로가 세계정신의 일부임을 모릅니다. 헤겔은 세계정신이 그 자신으로부터 소외alienated되었다고 표현해요. 그래서 각 개인은 다른 개인을 다른 존재로 취급하거나 적대합니다. 세계정신은 소외된 상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고 내재된 무한한 힘을 발휘하여 세상을 원래의 계획에 따라 정비organize할 수 없습니다. 세계정신의 변증법적 전개는 자유를 향해 진행됩니다. 결국 <정신현상학>은 세계정신이 초기의 상태에서 시작하여 스스로가 세상의 주인임을 알아가는 거대한 철학적 서사에 가까워요.

그런데 헤겔이라는 개인의 정신은 <정신현상학>을 써내면서 세계정신에 대해 자각했습니다. 개인의 정신은 세계정신의 일부이므로, 결국 세계정신은 헤겔로 인해 스스로를 자각한다는 목표에 도달한 것이고, 헤겔 스스로는 역사적 진보의 최첨단에 서게 된 것입니다. 좀 겸손한 저자였다면 이런 생각을 입 밖에 내길 주저했겠으나, 헤겔은 스스로 그렇게 여겼다고 합니다.

이런 면들은 오늘날 생각하기엔 터무니없이 들릴 수 있지만, 마르크스가 젊었을 시절에는 심각한 사상으로 간주되었다고 해요.

청년헤겔주의자가 재해석한 헤겔 이론

<정신현상학>에서 세계정신에 대한 부분을 빼도 상당 부분이 가치있다는 점을 이해하면 마르크스의 사상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세계정신을 ‘인류의 정신의 총합’ 정도로 고쳐 해석하면, <정신현상학>을 자유를 향한 인류의 진보에 대한 이론으로 변형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헤겔 사후(1831) 10년 사이 청년헤겔주의자Young Hegelians들은 헤겔을 이런 식으로 재해석합니다. 예를들어 헤겔은 “프로이센 정부가 세계정신의 화신”이라는 식의 발언도 종종 했는데, 청년헤겔주의자들은 헤겔이 정부의 돈을 받고(뀨: 베를린 대학 교수직 월급을 말해요) 스스로의 철학을 배신했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헤겔철학의 피상적 표현들은 당대 프로이센 정부를 헤겔이 인정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하며, 소외를 극복하는 세계정신을 다루는 그의 핵심 사상은 인류가 스스로를 완전히 이해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재해석합니다.

이 시기 마르크스는 베를린대 신학 강사이자 청년헤겔주의자의 리더였던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1809-1882)의 영향을 받습니다. 그는 종교는 인간 정신이 소외를 극복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며 이를 극복할 무기가 철학이라고 주장했어요. 인간이 신의 피조물인게 아니라 신이 인간의 피조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청년헤겔주의자들은 헤겔의 사상을 이용하여 헤겔을 비판하고 재해석합니다. 헤겔의 사상은 훌륭하지만 신화적 요소가 있고 미완의 상태라고 봤어요. 따라서 헤겔 사상에서 신화적 요소를 제거하고 유물론적 세상의 용어로 다시 해석하고자 했습니다. 세계정신 대신 인간의 자의식의 총합, 역사의 목적은 세계정신의 완전한 발달이 아니라 인류의 완전한 해방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종교적 환영을 제거해야 해요.

(뀨: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관념론자인 헤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 항상 의문이었는데 이제 의문이 풀렸어요.)

제3장. 신에서 돈으로From God to money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

루트비히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1804-1872)는 브루노 바우어보다 더 극단적인 철학자였습니다. 엥겔스는 포이어바흐의 <기독교의 핵심Essence of Christianity>을 극찬해요. 포이어바흐도 바우어와 마찬가지로 종교를 인간 정신에 대한 소외로 규정합니다. 지혜/사랑/자비 등은 인간의 특징인데 인간들이 이를 외재화하여 신으로 투영하고 스스로를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학은 잘못 기술된 인류학일 뿐이라고도 말해요.

포이어바흐의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만나기 2년 전인 1841년에 나옵니다. 마르크스는 이미 바우어를 통해 종교비판 순한맛을 먹어봐서 이 책에 큰 감명을 받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포이어바흐의 다음 책인 <철학의 개혁을 위한 예비 논제들Preliminary Theses for the Reform oh Philosophy>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책은 종교 비판에 그치지 않고 헤겔로 헤겔을 비판합니다. 헤겔은 세계정신이 역사를 움직이는 힘이고 인간은 세계정신의 제한된 일부라고 봤어요. 포이어바흐에게 이 사상은 인류의 본질essence을 인간 외부에 둔 것이니 종교와 마찬가지로 인류를 소외시키는 것으로 보았어요.

더 일반적으로는, 헤겔 및 다른 독일 관념론자들은 영혼, 정신, 신, 무한 등이 진정한 실재이고 인간, 동물, 돌 등 물질은 영적 세상에 대한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표현으로 봤으나 포이어바흐는 이를 뒤집습니다. 철학은 물질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즉, 사고가 존재에 앞서는게 아니라 존재가 사고에 앞선다고 말합니다. (뀨: 헤겔의 관념론이 유물론으로 뒤집어지는 순간)

경제로 눈을 돌리다

마르크스는 짧았던 <레니시 가제트> 편집장 시절(1842년), 포이어바흐를 따라 헤겔 철학으로 검열, 이혼, 법률, 경제 현황 등 현실 문제를 다루기 시작합니다.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이 시작되자 다시 정치철학 문제에 집중하였으나 이번엔 더 깊어진 현실 인식에 기반을 둘 수 있었어요.

이 시기(1843년)의 마르크스는 사회주의보단 자유주의자에 가까웠으며 오로지 인간의 의식 변화만으로 사회를 향상시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On the Jewish Question>라는 글에서 물질적/경제적 조건에 대해 강조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보입니다. 이 글은 후대에 유물사관materialist conception of history으로의 전환을 드러내는 첫 시도로 인식됩니다.

당시 사람들은 ‘유태인 문제’를 종교의 문제로 해석하곤 했으나, 마르크스는 종교로 인한게 아니라 유태인이 흥정 및 금융에 관심이 많다는 사회 일반의 관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사회를 재구성하여 돈을 없애고 이에 따르는 흥정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단, 마르크스는 유태인에 대한 편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에서 마르크스는 종교가 아닌 경제적 삶이 인간 소외의 핵심적 형태라고 주장해요. 특히 다음 인용은 1~2년 전 마르크스의 글에서 종교를 빼고 돈을 넣은 것과 유사합니다.

돈은 만물에 대한 보편적이고 자기설정적인 가치이다. 돈은 따라서 인간 및 자연물을 포함한 전 세상으로부터 그 가치를 훔쳐냈다. 돈은 인간의 노동과 존재의 핵심을 소외시키며, 이 소외가 인간을 지배하고 인간은 돈을 흠모한다.

청년헤겔주의자는 종교를 소외의 근원으로 봤다면, 포이어바흐는 더 나아가서 물질이 아닌 정신적 측면에 집중하는 모든 사상을 소외의 근원으로 봤어요. 마르크스는 더 나아가서, 철학이나 종교가 아니라 돈을 인간 해방의 장벽으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는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입니다.

하지만 이 흐름을 잠시 중단하고, 마르크스 사상의 다른 핵심 요소 중 빼먹은거 하나를 살펴봐야 합니다.

제4장. 프롤레타리아트Enter the proletariat

철학의 유물론적 무기

프로이센 정부의 탄압으로 <레니시 가제트>의 편집장을 그만두고 1843년에 파리로 이사한 후, 헤겔 정치철학의 비판적 분석에 매진합니다. 1844년, 본인이 공동편집장이었던 신생 언론 <독일-프랑스 연보>에 <헤겔의 권리론 철학에 대한 비판: 도입>을 기고해요. 기고문은 <도입>부만 있고 전체 원고는 사후에 출판되었으나, 마르크스 사상의 중요한 이정표입니다.

<도입>은 바우어와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을 요약하며 시작합니다. 이 부분에서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알려진 바와 달리 단순한 종교 비판은 아니고 맥락과 함께 읽으면 좀 더 미묘한 느낌이 있습니다.

종교는 억압당하는 존재의 한숨이고 비정한heartless 세상의 인정heart이며 영혼없는 상태conditions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마르크스는 종교를 억압과 비정함에 대한 응답으로 보았어요. 하지만 이 응답은 억압에 도전하는 대신 고통에 둔감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적절하진 않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 글는 또한 단순한 철학적 비판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도 처음으로 나와요.

비판에 의한 무기는 무기에 의한 비판을 능가할 수 없다. 물질적 힘은 반드시 물질적 힘에 의해 전복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론도 충분히 많은 대중을 사로잡으면, 물질적 힘이 될 수 있다.

독일 민중 해방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가능성은) 극단적 사슬radical chains에 묶인 계급의 형성에 있다. … 보편적 고통이 보편적 특징인 집단 … 인간성의 완전 상실로 인해 인간성의 완전한 만회로만 복구될 수 있는 집단. 특정 집단으로 소멸된 사회, 그게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가장 낮은 시민 계급이 프롤레타리아트로 불렸습니다. 마르크스는 이 용어를 산업 사회의 노동 계급을 지칭하는 용어로 변용해요. 노동 계급이란 재산이 없고 노동을 팔아서 살아가는 이들을 말합니다.

헤겔 철학을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는 이 계급의 핵심적 역할을 발견해요.

철학이 프롤레타리아트에게서 물적 무기를 발견함과 동시에,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에서 지적 무기를 발견한다. … 철학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초월transcending 없이 스스로를 실현할 수 없으며, 프롤레타리아트는 철학의 실현 없이 스스로를 초월할 수 없다.

재산을 가진 중간 계급은 스스로를 해방할 수는 있겠으나 그 과정에서 모든 인간을 해방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재산이 없는 노동 계급은 인간이라는 지위 말고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기에, 스스로의 해방이 곧 모든 인간의 해방이라고 말합니다. 1844년 전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에 대한 이같은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도입>은 중요한 전환점입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변증법적 역할

이 시기 마르크스의 주장은 경제학, 역사학, 과학보다는 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어요. 인간 소외는 특정 계급의 문제가 아닌 인류 보편의 문제이므로 이 문제의 해결책은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본편성은 노동 계급이 겪는 완전한 박탈에서 유래해요.

스스로 소멸할 씨앗을 품고 있어야만 하는 점, 모든 환희는 절망의 깊이로부터 나온다는 점 등은 십자가형에 의한 예수의 인류 구원, 헤겔의 주인-노예 변증법, 마르크스의 자본가-프롤레타리아트 변증법 사이의 일관된 구도입니다.

마르크스는 파리로 옮긴 직후 프랑스 사회주의 노동자 단체(the League of the Just)의 리더들과 함께 거주하며 영향을 받습니다. 따라서 <도입>엔 두 과정이 녹아 있어요. 1) 프롤레타리아트 개념을 자신의 철학에 맞추기 2) 자신의 철학을 플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가능성에 맞추기.

제5장. 첫번째 마르크스주의The first Marxism

경제학 비판

지금까지 마르크스는 두 가지 중요한 아이디어를 전개했습니다.

  1. 인간 소외의 핵심적 형태는 종교나 철학이 아닌 경제이며, 이는 우리의 물질적 필요wants를 만족시키는 방식에 뿌리를 둠
  2. 자본주의 체계에서 인류해방을 위한 물질적 힘은 노동 계급에게서 나옴

다음 단계는 이 두 아이디어에 기반하여, 기존의 헤겔주의적 체계 및 그 변형을 모두 능가하는 새로운 체계적 세계관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 작업은 1844년 <경제 및 철학 원고Economic and Philosophic Manuscripts>에서 시작되며 이후 평생 지속되어 1867년 위대한 저서 <자본: 정치경제 비판 제1권>에 반영됩니다.

1844년 <원고>는 1932년에야 공개되었다고 해요. 빠진 부분이 많고 미완인 상태이나 당시 마르크스가 무엇을 시도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사료입니다.

서문은 포이어바흐를 칭송하며 시작해요. 이후엔 애덤 스미스 등 고전 경제학에 기반하여 급여, 이익, 임대 등 주제를 다룹니다. 그 이유는 기존 경제학이 노동자를 상품으로 만들어 그 자체를 수요공급의 법칙에 소속시킨 점을 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노동자의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임금이 낮아지고 몇몇 노동자는 굶게 됩니다. 따라서 임금은 노동자가 간신히 살 수 있는 정도 수준으로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요. 또한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의 일부를 계속 착취해야 합니다. 결국 자본이란 누적된 노동이며, 노동자의 노동이 고용인의 자본을 증가시킵니다. 증가된 자본은 더 큰 공장과 더 많은 기계에 투자됩니다. 더 정교한 기계는 분법을 심화시키고 따라서 더 많은 자영업자를 노동자로 전락시켜요. 이에 따라 노동자가 추가 공급되므로 경쟁을 심화시키고 임금은 더 낮아집니다.

이는 모두 정통 경제학의 가정으로부터 연역된 결론이며 마르크스 자신은 경제학자 입장에서 글을 쓴 게 아녜요. 그는 “인류의 발전에 있어서 인류를 추상적 노동으로 환원하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와 같이 기존 경제학자들이 던지지 않은 더 큰 질문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추상적 노동abstract labour이란 그저 임금을 위해 하는 노동을 말해요. 스스로 신발이 필요해서 신발을 만들면 추상적 노동이 아니지만, 그저 임금이 필요해서 신발을 만들면 추상적 노동입니다.

(뀨: 현대의 거의 모든 노동은 추상적 노동이겠어요. 현대 사회는 필요에 의해 생산하는게 아니라 생산에 맞춰 소비를 증가시키려 한다는 에코페미니즘의 문제 의식이랑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아마 에코페미니즘이 마르크스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걸까요?)

소외된 노동

마르크스는 경제학적 법칙들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한 더 깊은 설명을 얻고자 했습니다. 마르크스가 탐구했던 깊은 설명이란 뭘까요. <소외된 노동>이라는 제목이 붙은 원고에 그 답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고에서 그는 포이어바흐의 종교 비판과 병행적인 주장을 펼쳐요.

노동자가 스스로를 자신의 노동으로부터 외재화할수록 그는 더 강력하게 소외된다. 내적 삶은 더 가난해지고 자기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더 줄어들기에, 그가 만들어내는 객관적 세상은 자신과 반대인 세상이다. 이는 종교와 같다. 신에게 더 많은 것을 담을수록 자신은 비어만 간다. 노동자는 자신의 삶을 물건에 담아낸다. 이는 곧 삶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물건의 것이 됨을 뜻한다. … 노동자의 노동이 스스로 만들어낸 생산물에 외재화된다는 것은 노동 자체가 물건으로, 즉 외적 존재로 만들어짐을 뜻할 뿐 아니라, 노동자의 외부에 독립적이고 이질적인alien 채로 존재하며 노동자에게 반대할 충분한 힘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짐을 뜻한다. 노동자가 물건에 빌려준 삶은 노동자를 모욕한다. 물건은 노동자에게 적대적이고 이질적이게 된다.

이게 마르크스의 고전 경제학 비판을 보여주는 큰 그림입니다. 마르크스는 경제학을 좀 더 폭넓게, 역사적 맥락에서 보고자 했어요. 사유재산, 경쟁, 부의 극대화만을 바라보는 개인들 등의 개념은 언제나 성립하는 당연한 전제가 아니라, 인간이 소외된 상황에서 나타나는 특수한 현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어요. 즉, 기존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특성을 본질적이고 항구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면, 마르크스는 인류의 발전사에서 겪게 되는 필연적이지만 일시적인 단계로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마르크스는 인류의 소외된 현 상태를 진단해요. 그의 전제 중 하나는 ‘인간은 종적 존재species-being’라는 것입니다. 이 개념은 원래 헤겔의 것이었으나 포이어바흐와 마르크스를 거치며 조금씩 변형됐어요.

헤겔은 애초에 세계정신을 상정했습니다. 포이어바흐는 이를 덜 미신적인 개념으로 변형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간은 다른 인간이 자신과 같은 종species임을 인식하고 전체 종의 완성perfection에 참여하고자 하는 점입니다. 인간은 이를 ‘신’이라고 잘못 이해했으나 사실은 인류 그 자체입니다. 마르크스는 이 개념을 다시 변형하여 ‘생산적 삶이 종적인 삶’이라고 규정해요. 생산 행위가 인간이 종적인 존재임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그 근거는, 동물은 당장의 필요에 따른 생산만을 하지만(거미의 거미줄 등), 인간은 보편적 표준에 따라 생산한다는 점이라고 말해요.

인간은 당장 필요가 없는 것도 만들어내며, 그 한계는 오로지 상상력 및 미적 감각 뿐입니다. 이 관점에서 자유로운 생산을 위한 노동은 인간 삶의 핵심이고 자신이 만든 물건은 항상 자신의 것입니다. 하지만 소외된 노동에서 생산된 물건은 그렇지 않아요. 노동자가 스스로의 상상에 의거하여 자유로운 생산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이는 인간을 동물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 억압된 것입니다. 소외된 노동자는 더이상 종적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뀨: 마르크스가 잉글랜드로 더 일찍 건너가서 다윈이랑 알고 지냈더라면 동물에 대해 좀 더 다양한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예를들어 마르크스가 온갖 재료로 개성있게 꾸며진 정자새bower bird 둥지를 봤더라면, 공작새 꼬리에 대한 다윈의 고민을 알았더라면, 또는 인간 본성과 동물 본성의 연속성에 대해 조금 더 이해했더라면, 생산/필요/소비 등에 대해 좀 더 깊게 숙고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노동자의 세 가지 소외 방식을 언급했습니다.

  • 노동의 생산물로부터 소외
  • 노동활동 자체로부터 소외
  • 종적 존재로부터 소외

이는 다시 네번째 소외로 이어집니다. 노동자는 자본가에 복종하며 적대적 관계를 맺게 되므로, 자본가는 이질적alian 존재입니다.

  •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소외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임금 상승은 더 나은 노예일 뿐 해결책이 아닙니다. 노동자의 존엄을 회복하려면 임금, 소외된 노동, 자유 재산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해요.

공산주의는 ..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사이 적대 관계의 진정한 해결책이다. 존재와 본질, 대상화와 자기긍정, 개인과 종 사이의 갈등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다.

하지만 공산주의가 어떠한 형태여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없습니다. 다만 공산주의 사회가 현재와 얼마나 다를 것인지에 대한 기대를 묘사하는 내용들이 나와요. 그는 인간의 모든 감각이 사유재산에 의해 저하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광물의 가치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아닌 보석의 시장 가치에 의해 평가되는 식으로요. 사유재산에 의해 소외된 상태에서 인간은 그저 소유하거나 다른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 이외엔 물건의 가치를 이해할 수 없게 됩니다. 사유재산을 없애야만 세상을 제대로 보게될 것입니다. 음악을 아는 사람만 이를 감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외되지 않은 사회적 인간만이 세상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초기 마르크스주의의 중요성

싱어는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마르크스의 이러한 주장들은 과학적이지 않다고 말해요. 상세한 관찰이나 근거도 부족하고, 통제 실험도 아닙니다. 헤겔에 비하면 현실적이지만 여전히 사변적인 특징이 강하다고 평가합니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 역사의 전개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 목적은 인류의 완전한 해방
  • 세상을 만족스러운 형태로 재구성하고 인간의 진정한 능력을 키울 수 없는 조건에 놓여 있는 현재의 인류는 자유롭지 못함
  • 인간이 만든 사유재산 제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노예로 만들어버림
  •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해방이란 역사적/철학적 필연
  • 혁명 이론의 과업은 현재의 상황이 해방을 향한 변증법적 진행의 어느 단계인지 파악하는 것에 있음.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의 진행을 장려하고 해방을 이룰 수 있음

1844년 이후의 모든 글은 이 <원고>에서 다루었던 주제들의 재작업이거나 변형이거나 개선이거나 확장에 가깝습니다.

제6장. 유물사관의 발전The development of the materialist theory of history

신성한 가족The Holy Family

마르크스의 첫 출판서 <신성한 가족>은 그의 전 스승이자 동료였던 브루노 바우어와 그의 형이 공동편집자로 있는 저널 <일반 문학 가제트General Literary Gazette>의 글을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845년에 엥겔스와 만난 직후 함께 팜플렛 수준으로 15 페이지 분량을 썼다가, 둘이 헤어진 후에 마르크스가 분량을 추가하여 300 페이지 짜리 책으로 만들어요. 1845년에 쓰인 <신성한 가족>은, 1844년 <원고>의 사상으로부터 유물사관의 좀 더 완성된 형태로 옮겨가는 과정에서의 견해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주의자 프루동의 사유재산 비판을 지지하는 아래 문단은 여전히 소외 개념으로 접근합니다.

유산계급과 프롤레타리아트는 둘 다 자기소외self-alienation를 겪는다. 하지만 전자에는 확약confirmation, 좋음good, 권력power이, 후자에는 절멸, 무력, 비인간적 현실이 존재하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어지는 문장에서는 유물론적 역사관의 씨앗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사유재산도 스스로를 자기소멸로 이끈다. 단 이 과정은 사유재산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사유재산에 의존하지 않는 이들이 만들어짐에 따라, 의지에 반하여 또 의식하지 못한채 그 위치에 놓이는 이들이 만들어짐에 따라, 즉 사유재산에 의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만들어짐에 따라서만 전개될 수 있고 이에 따라 자기붕괴된다. … 우리가 질문해야할 것은 어떤 프롤레타리아가 또는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지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는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는 무엇인지 또 그들이 그러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을 할 수 밖에 없도록 강요 받는지이다. 그 목적과 역사적 행위는 그들의 삶의 상황 및 오늘날 부르주아지 사회 전체 구조에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 문단은 헤겔주의적입니다. 사유재산과 프롤레타리아트는 반명제antitheses이며 필연적 모순을 야기해요. 사유재산은 공장에서 일하는 무산계급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유재산에 의해 비참한 상황에 처하며 스스로를 폐지하도록 강요받는데 이는 곧 사유재산의 폐지를 전제로 합니다. 결국 둘 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헤겔의 용어로 표현하자면 이는 정반합의 과정이에요. 새로운 ‘합new synthesis’으로 이행transcended하며 기존의 모순을 해소하는 과정입니다. 이게 바로 유물론적 역사관의 초기 관점입니다. 사유재산의 존재로부터 필연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귀결을 말하고 있어요.

<포이어바흐에 대한 논제들>The <Theses on Feuerbach>

엥겔스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다룬 첫 문서는 <신성한 가족>이 아니라 1845년에 대충 갈겨적은 <포이어바흐에 대한 논제들>입니다. (뀨: 영어 번역 전문)

<논제들>은 포이어바흐의 견해와 자신의 견해 사이의 차이점을 기록한 11개의 짧은 메모 모음입니다. 하지만 싱어가 보기에는, 엥겔스의 주장과 달리 이 글들은 대체로 이미 전에 쓴 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해요.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 등 초기 유물론자들이 사물과 이에 대한 우리의 인식perception에 대하여 헤겔과 달리 수동적인 관점을 취한 점을 비판합니다. 헤겔은 우리의 정신적 활동mental activity이 세상에 대한 인식을 형성한다고 보았어요. 마르크스는 헤겔 관념론의 활동적이고 변증법적인 측면을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 결합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불립니다. 단 마르크스 자신은 그런 표현을 쓴 적이 없다고 해요.

활동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것은, 이론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질적 인간 활동이 필요하다는 것을 뜻해요. 마르크스는 1845년 <논제들> 이전에도 유사한 견해를 반복적으로 밝혔어요.

  • 1843년 <유태인 문제에 대하여>에서는 사회 재구성을 통해 흥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했고,
  • 1844년 <도입>에선 프롤레타리아트의 물적 무기 없이는 철학이 실현될 수 없다고 말했으며,
  • 1844년 같은 해 <원고>에선 공산주의를 제안했습니다.

<논제들>은 ‘이론과 실천의 통합’이라는 마르크스의 원칙을 담은 출처로 종종 인용되곤 합니다.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이 11번째 메모는 마르크스의 묘비에 새겨져 있습니다. 일부는 바리케이트(뀨: 아마도 6월 봉기)에서 마르크스의 철학을 논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일부는 가치와 삶을 일치시키라는 말로 해석하기도 하지만(예: 평등하자며 넌 왜 부자로 살아?), 싱어는 그런 뜻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싱어에 따르면 <논제들>의 마지막인 11번째 메모는 헤겔 변증법에 대한 유물론적 재해석이라는 맥락에서 읽어야 해요. 올바른 의미는, 철학의 문제는 그저 세상에 대한 해석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고, 철학적 모순을 품고 있는 세상을 바꾸어야만 해소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해요. 즉, 철학은 어디를 바꾸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독일 이데올로기The German Ideology

유물사관은 사유보다는 인간의 실질적 행동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는 역사관입니다. 이에 대한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은 저작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다음 주요 작업인 <독일 이데올로기 (1846)>입니다.

이 책에선 포이어바흐도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모든 인간 역사의 전제는 당연히 인간 개인의 삶에서 시작한다. .. 인간은 의식, 종교 등에 의해 동물과 구분된다. 인간은 생필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를 동물과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는 인간의 물리적 구성에 의해 조건지어진 한 걸음이다. 생필품을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실제적actual 물적삶을 생산하기 시작한다. .. 하늘에서 시작하여 땅으로 내려오는descend 독일 철학과 대조적으로, 우리는 땅에서 시작하여 하늘로 올라간다ascend. 이는 말하자면, 우리는 인간이 말하고 상상하고 생각하는 바나, 인간이 어떠하다고 말해지고 상상되고 여겨지는 바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실재하고 활동하는 인간, 그리고 이들의 실제 생활 과정에 기반하여, 관념의 반응reflexes과 메아리echoes가 전개되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의 안에 형성된 유령phantoms 또한 필연적으로 물적 삶의 과정의 승화이며, 이는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할 뿐 아니라 물적 전제에 의해 제한 받는다. 도덕, 종교, 형이상학 등 관념론의 모든 주제와 이에 대응하는 의식의 형태들은 그러므로 더이상 독립된 형상을 유지할 수 없다. 관념에는 역사도 없고 전개도 없다. 물적 생산 및 물적 교류를 발전시키는, 변형하는, 그러한 인간만이, 그리고 그들의 실존, 그들의 사고, 그들의 사고의 산물만이 역사와 전개를 가진다. 삶이 의식에 의해 결정되는게 아니라, 의식이 삶에 의해 결정된다.

이 지문은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포괄적이고 명확한 개론입니다. 구체적 설명들은 이후 저작들에서 변하긴 하지만, <독일 이데올로기>는 마르크스의 완전히 성숙한 유물사관을 담고 있습니다.

한편, 위 글을 보면 소외에 대한 그의 관심이 더 과학적인 접근으로 대체된 것으로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기부터 철학적 추론보다 역사 자료를 더 활용하는 것은 사실이나 소외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소외되어 있으나 인간을 소외시키는 힘은 초자연적/항구적 힘이 아니고 인간의 생산력 자체라고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제7장. 역사의 목표The goal of history

유물사관이 진정으로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유물사관이 발전된 과정을 살펴보았으니 이제 내용을 볼 차례입니다. 싱어는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이 엥겔스의 주장대로 “인간 역사 발전에 대한 과학적 법칙”을 발견한 것인지, 마치 다윈의 진화론에 비견될만한 성격의 발견인지를 물으며 시작해요.

유물사관의 명확한 서술은 1859년 <정치경제 비판에의 기여A contribution to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의 서문에 담겨 있습니다. (뀨: 마침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낸 해랑 같아요.)

스스로의 삶을 사회적으로 생산함으로서 인간은 필수적이면서도 스스로의 의지와는 독립적인 어떤 관계를 맺게 된다. 관계란 인간의 물적 생산력 발달의 각 단계와 대응되는 생산 관계를 말한다. 이러한 생산 관계들의 총합이 사회의 경제적 구조를 이루는 진정한 토대foundation이며, 이 토대 위에서 .. 법적/정치적 상부구조superstructure가 나타난다. 이 토대는 또한 사회적 의식의 특정 형태와 대응된다. 물적 삶의 생산 방식the mode of production이 사회적/정치적/지적 삶의 과정 전반을 규정짓는다conditions. 인간의 존재를 결정하는건 인간의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인간의 의식을 결정한다. 인간 발달의 특정 단계에 이르면, 사회의 물적 생산력은 기존의 생산 관계(같은 의미에 대한 법적 표현일 뿐이지만 달리 말하자면 재산 관계)와 충돌하게 된다. 생산력의 발전으로 이러한 관계들은 그들의 족쇄fetters가 된다. 이로부터 사회적 혁명의 시대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반의 변화와 함께 거대한 전체 상부구조도 빠르게 변화된다. 이러한 변화를 고려함에 있어서, 자연 과학에 의해 엄밀하게 결정되는 생산의 경제적 조건의 물적 변화와, 법적/정치적/종교적/미적/철학적인 측면, 즉 인간이 그 충돌을 의식하고 싸울 수 있는 관념적 형태, 이 둘을 항상 구분해야 한다.

보통 마르크스가 사회를 경제적 토대상부구조로 나눈다고 말하곤 하지만, 위 지문을 상세히 살펴보면 세 개의 구분이 존재해요.

  1. 물적 생산력
  2. 생산 관계와 경제적 토대
  3. 상부구조

이 중 생산력은 노동력, 원자재, 기계 등을 포함합니다. 방앗간 주인이 손절구를 사용한다면 손절구도 생산력이에요. 생산력이 생산 관계를 만들어냅니다. 생산 관계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자 사람과 사물 사이의 관계이기도 해요. 방갓간 주인이 자기 손절구를 쓸 수도 있고 옆집에서 빌릴 수도 있습니다. ‘소유하기’, ‘빌리기’ 등이 생산 관계입니다. 뫄뫄가 솨솨를 고용하는 등 인간-인간의 생산 관계도 존재해요. 생산력 자체가 아니라 생산 관계가 사회의 경제적 토대를 이루며 이 토대 위에서 상부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유물사관은 물질적인 생산력에서 시작하며, 생산 관계는 생산력의 발전 단계에 대응됩니다. 생산력이 수작업 단계라면 여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 생산 관계는 지주-농노 관계이며, 이 봉건적 관계가 그 사회의 경제적 토대가 되며, 이 기반 위에 정치적/법적 상부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법도 왕과 지주와 농노에게 특정 권리를 부여하는 식으로 규정되고, 종교와 도덕도 이 구조에 맞춰집니다.

증기기관이 개발됨에 따라, 즉 생산력의 단계가 발전함에 따라, 이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큰 공장이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 노동자들이 밀집해요. 봉건적 생산 관계는 농노의 능력을 제한하므로 이들은 땅을 떠나고 이에 따라 지주-농노 관계는 붕괴되고 자본가-고용자 관계로 대체됩니다. 이 새로운 생산 관계가 사회의 새로운 경제 구조를 이루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적 법/정치/종교/도덕 상부구조가 탄생해요. 지주의 특권이 사라지고 ‘거주/이전의 자유’ 같은 권리가 생겨나게 됩니다. 왜냐하면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이사할 수 있어야 공장에 집결할 수 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생산력이 생산 관계를 결정하고 생산 관계가 곧 경제적 토대를 이루며, 이로부터 정치적/법적/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만들어져요. 생산력이라는 물질적 특징에서 시작하여 정치/법/도덕 등의 관념적 상부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

해석의 문제

손절구로 인해 봉건 지주가 탄생하고 증기제분소로 인해 자본가가 탄생했다는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마르크스도 분명 증기 기관이 관념에 의해 발명된 점, 자본주의의 탄생에는 증기 기관만큼이나 관념도 영향을 미친 점을 알고 있었을텐데 왜 물질에서 관념으로의 흐름만을 강조했을까요? 이론의 참신함을 보이기 위한 과장일까요?

한쪽 극단의 해석은 그가 진짜 진지하게 결정론을 믿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읽히는 글도 많습니다. 하지만 상부구조가 반대 방향으로의 영향을 미친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밖에 없는 주장도 종종 보입니다. 게다가 정치 등 상부구조가 정말 영향을 못 미친다면 마르크스는 왜 그렇게 열심히 노동자들과 정치활동을 했을까요.

엥겔스에 따르면, 경제적 측면의 중요성을 완전히 무시하는 이들의 주장을 강하게 반대하기 위한 표현들이었으며, 상부구조와 토대 사이의 양방향 상호작용을 인정했다고 합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말년에 “(결정론적 마르크스주의가 마르스크주의라면) 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양방향 상호작용을 인정하는 순간, ‘상부구조가 생산력을 결정하는게 아니라 생산력이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말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양방향 상호작용이 있는데 하나가 다른 하나를 결정한다는 것은 이상한 말이니까요.

세번째 해석은, 상부구조의 두 관념이 경쟁할 때 생산력 증가 및 그로 인해 영향 받을 계급의 이점에 더 크게 기여할 관념이 이길 확률이 조금 높아진다는 해석입니다.

과학적 발견인가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을 결정론으로 해석하면 자명하게 틀린 주장이 됩니다. 상호작용을 마냥 허용하면 ‘모든 게 연결되어 있다’는 식의 당연한 말이 됩니다. 이 양극단 사이에, 조금 전에 언급한 확률적 해석이 존재합니다. 이 해석에 따르면 마르크스의 이론을 과학적 발견이라 볼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이론이 얼마나 잘 맞는지 검증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물사관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낼 수 있을만큼 많고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내고 관찰할 수 없으니 검증이 어렵습니다.

혹은 좀 더 좁은 의미로 생각해볼 수도 있을텐데, 경쟁하는 두 관념이 있는 상황에서 어떤 관념이 생산력의 발전을 가져올 가능성이 더 큰지 묻고 이러한 요인들이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살펴보는 식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유물사관은 연구의 방향을 제안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이 경우 유물사관의 가치는 이러한 제안들이 얼마나 가치있는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따라 달라질텐데, 많은 사회학자들은 유물사관이 이런 측면에서 매우 유익하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한편 마르크스는 왜 종종 결정론자처럼 말을 했을까요? 엥겔스의 주장대로 반대자들을 논박하기 위한 과장된 표현일 뿐일까요? 이것도 가능한 설명이겠지만, 싱어는 더 깊은 설명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요.

싱어에 따르면 생산력에 대한 마르크스의 믿음은 사실 관계에 대한 일반적 믿음이 아니라 헤겔의 유산일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관점의 헤겔 관념론에서 인과의 방향을 뒤집은 것이라면(헤겔은 관념이 물질에, 마르크스는 물질이 관념에 영향을 준다고 봄), 헤겔 관념론 또한 마르크스 유물론과 동일한 문제를 지닐 것입니다. 헤겔이 정신을 앞세웠던 이유는, 정신이 실재이고 물질적 세계는 징후일 뿐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물질적 세계가 궁극적 실재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마르크스의 이같은 생각은 여러 글에서 표현됩니다. 예를 들어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는 물질에 대해서는 ‘실제 삶의 과정’, ‘실제의’, ‘활동하는 인간’, 관념에 대해서는 ‘뇌 안의 유령’, ‘메아리’ 같은 표현을 쓰곤 했어요. 이러한 표현은 초기 저작 뿐 아니라 <자본> 등에서도 반복되고요. 정리하자면, 마르크스는 관념이나 의식이 아닌 인간의 생산적 삶을 궁극적 실재로 보았고, 생산력의 개발과 이를 통한 인간 역량의 해방을 역사의 목표로 보았습니다. 상부구조는 그저 ‘무의식적 도구’로 역사에 의해 쓰이는 것이고요.

이 해석이 맞다면 유물사관은 일반적 인과론이 아닙니다. 경제적 변화가 사회 다른 영역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설명하는 현대적 과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 안에서 작용하는 실제적 힘들과 그 힘들이 향해가는 목표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고자 하는, 역사에 대한 설명으로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마르크스가 정치나 법과 같은 관념이 생산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도 왜 생산력의 발전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확고히 믿었는지 이해할 수 있어요. 마르크스가 왜 노동계급의 변화를 위해 노력했는지도 알 수 있고요. 그는 역사의 도구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 그는 역사의 목적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도구라는 점에서 특별했을 수 있어요. 생산력은 결국 필연적으로 발전할 것이지만, 개별 인간들의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역사적 역할 수행하기 때문에 발전하는 것입니다.

만약 마르크스에게 “어차피 될 일인데 왜 그렇게 애를 썼나?”라고 묻는다면 아마 그는 “나는 내가 역사의 도구로 쓰이는 걸 즐겼다”고 말했을지 모릅니다. 또는, 어차피 달성될 일이긴 하지만 노동자의 고통이 지나치게 크니 이를 앞당길 수 있으면 좋은게 아니냐고 말했을 수도 있고요. 피터 싱어는 그렇게 추측합니다.

제8장. 경제학Economics

마르크스 경제 이론의 발전을 추적하기

마르크스는 <자본>을 그의 대표작으로 여겼으며 ‘거의’ 완성된 상태로 출판합니다. 2권과 3권은 마르크스 사후에 남은 글들을 모아 엥겔스가 출판해요. <잉여가치에 대한 이론>이라는 제목의 4권은 거의 진행된 바가 없다고 합니다.

싱어는, 초기 저작들을 이해하면 완성된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 1844년으로 즈음의 사상을 살펴보겠다고 합니다. 당시 그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인간 삶의 소외된 형태로 보기 시작해요. 이 체계에서 노동자는 강제로 노동력을 팔아야 하고요. 마르크스에게 노동력이란 인간 존재의 핵심인데 이걸 강제로 판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따라서 마르크스에게 있어서 경제학의 중요성은 1) 이 소외의 과정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는 것, 2) 그리고 이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에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1847년에 브뤼셀의 ‘노동자 클럽Workingmen’s Club’에서 경제학에 대한 강연을 하였고 이를 정리하여 <임금-노동 그리고 자본Wage-Labour and Capital>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해요. 1844년 <원고>와 유사하지만 헤겔 철학의 용어가 빠진 느낌입니다. 이 책을 이해하면 <자본>을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해요.

이 책은 노동에서 시작해요. 노동은 노동자의 삶의 활동이자 삶의 현현이지만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은 노동자가 살기 위해 팔아야 하는 상품이 됩니다. 삶의 활동은 살아남기 위한 수단이 되고요. 노동은 삶의 일부가 아니라 삶의 희생입니다.

다음은 임금. 노동자의 임금은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수요공급에 의해 결정되지만, 노동자가 죽지 않고 계속 노동을 할 수 있을 최소한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고 말해요.

다음은 자본. 영국 고전 경제학에서 자본은 원자재, 생산 도구, 지속적 생산을 위한 자급 수단means of subsistence로 구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요소는 노동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자본이란 누적된 노동과 같아요. 고전 경제학은 이 모든 것들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 하에서만 참이라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점을 비판해요. 아프리카인은 언제나 무조건 노예인게 아니라 부당한 특정 사회에서만 그렇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누적된 노동이 자본인 것은 부르주아지 사회에서만 그렇습니다.

물질적 제품들은 또한 상품이기도 해요. 상품에는 사용가치use-value 뿐 아니라 교환가치exchange-value도 존재합니다. 사과의 사용가치는 맛있음과 배부름 등입니다. 교환가치는 딸기 세 개로 바꿀 수 있거나 3,000원 어치이거나 등 교환에 의해 정해지는 가치입니다. 사용가치는 시장 또는 어떠한 교환 체계와도 독립적이라고 말해요.

인간 욕구는 사회적이기에 가난과 풍요는 상대적 기준입니다. 리카르도의 주장대로, 임금이 오를 수는 있으나 자본가-노동자의 간극은 더 벌어질 것입니다. 자본이 축적되면 자본에 의한 노동자 지배가 강화됩니다. 이 적대적 권력에 의해, 노동자에겐 자본의 성장을 도울 수 있을만큼의 생필품만 주어지게 됩니다.

자본가 사이의 경쟁은 노동 생산성 증가를 추동하며, 규모 증가 및 더 세밀한 분업으로 이를 달성하게 됩니다. 분업은 여러가지 영향을 파생시켜요.

  1. 1명이 10명 일을 하게 만들어 노동자간 경쟁이 심화되어 임금이 낮아짐
  2. 노동을 단순 작업으로 변환시켜서 전문 기술이 필요 없어짐
  3. 경쟁에서 밀린 영세한 자본가를 노동자로 몰아냄
  4. 증가된 생산을 감당할 새 시장이 필요해지며 경제 위기는 더 폭력적이게 됨. 원래 과잉생산에 따른 위기는 새 시장을 열거나 기존 시장을 더 꼼꼼하게 착취하여 해소 가능했으나 생산이 지나치게 증가하면 이러한 방식이 작동할 여지가 줄어들게 됨

지금까지의 설명엔 풀어야 할 문제가 한가지 있습니다. 상품은 평균적으로 ‘가치’에 따라 교환됩니다. 상품의 가치는 투입된 노동의 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노동도 상품이기에 가치에 따라 거래됩니다. 그러면 노동을 사서 상품을 만들어 파는 자본가의 이익은 어디서 발생할까요? 리카르도 등 당대 경제학자들도 당면했던 이 문제에 대한 답이 이 책에는 나와있지 않아요.

이 문제에 대한 답은 <개요Grundrisse>(뀨: “Grundrisse: Foundations of the Critique of Political Economy”, 1857-1858년 작업, 1939년 출판)에 나옵니다. <개요>는 <자본> 및 기타 관련 프로젝트에 대한 거친 초안입니다.

<개요>의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은 마르크스의 사상이 성숙한 단계에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용어나 논증 방식은 1844년 이후에 쓰인 어떤 글보다도 1844년 <원고>와 가깝다는 점입니다. 싱어가 보기에 마르크스의 <자본>은 여전히 청년헤겔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요.

<개요>에는 마르크스의 성숙한 경제 이론의 핵심 요소가 담겨 있어요. 노동자는 미리 정해진 가격에 미리 정해진 양(예: 하루)의 “객관화된 노동objectified labour”을 팔지만, 자본가는 이렇게 산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부를 뽑아냅니다. 사실 자본이 사는건 “살아있는 노동living labour”입니다. 이 사이에 답이 있어요.

잉여 가치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엥겔스는 그의 두번째 중요한 발견이 잉여가치surplus value라고 말했습니다. 잉여가치란 자본가가 산 노동력의 교환가치 이상으로 뽑아낸 가치를 말해요. 객관화된 상품인 ‘노동시간’과 창의적인 생산력인 ‘노동력’의 차이가 잉여가치입니다.

노동자가 살아서 생산을 계속할만큼의 임금이 일당 $1이고 일 12시간을 일한다면 12시간 노동의 교환가치는 $1입니다. 일시적으로 임금이 오르더라도 노동자 간 경쟁으로 인해 다시 최소 수준인 $1로 내려갈 것입니다. 하지만 생산력이 발달하여 6시간만 일해도 기존과 동일한 상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어도 자본가는 12시간의 노동시간을 샀기 때문에 노동자로부터 남은 6시간의 잉여가치를 추가로 뽑아낼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자본가는 노동자의 생산력으로부터 자본을 축적하고 노동자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 있게 됩니다.

<자본>

<자본>의 부제는 이미 친숙한 이름인 “정치 경제 비판”입니다. 고전 경제학을 고전 경제학 자체의 전제를 이용하여 비판하고, 더 폭넓은 역사적/철학적 관점에서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은 자본의 기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여러 객관적 데이터와 함께 제시하고 있기도 해요.

1장, 특히 마지막 절 “상품 숭배와 그 비밀” 부분을 통해 마르크스의 이론 체계의 큰 틀이 당대의 상황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종교인은 인간 두뇌의 산물이 마치 독립적 존재인 양 숭배하는데 이와 유사하게, 노동의 사회적 특징이 마치 그 노동의 결과인 상품의 객관적 특성인 양 여겨지는 점을 비판해요.

마르크스는, 인간의 사회 관계가 상품의 가치로 여겨지는데 그 가치란 마치 인간 관계와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것으로 취급되곤 한다고 말해요. 상품을 상품 그 이상의 것으로 숭배하는 것입니다. 이는 종교인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유사해요.

필요가 아닌 교환을 위해 상품을 만들기 시작하며 문제가 생깁니다. 상품의 교환가치는 투입된 노동의 양에 비례하므로, 교환을 위해 생산하는 순간 노동의 가치는 사용가치가 아닌 교환가치이게 됩니다. 상품을 교환하는 순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생산에 투입된 서로 다른 노동을 모두 동일한 것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상품 생산에 기반을 둔 사회에는 ‘사회의 삶의 과정들life-processes of life’을 덮는 ‘신비한 장막mystical veil’이 존재합니다. 장막은 우리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생산을 하면, 즉 의식적으로 생산을 계획하고 통제regulate하면,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상품의 가치가 사용가치와 일치하게 됩니다.

애덤 스미스 등 고전 경제학자들은 장막을 일부 들춰내서 상품의 가치(즉, 교환가치)는 투입된 노동의 양에 일치한다는 점을 알아냈으나, 이를 마치 필연적 법칙인 양 취급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생산 과정이 인간을 지배한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라는게 마르크스의 견해입니다.

<자본>의 저술 목적은 장막을 찢고, 현대 사회의 삶의 과정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에 있습니다. 다른 저술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스스로의 피조물에 지배되는 소외 상태에 놓여있다고 주장해요. 싱어는, 이 기조에서 <자본>을 읽으면 모든 조각이 들어 맞는다고 말해요.

첫 9개 장은 자본주의사회의 생산의 경제적 기반을 설명합니다. 고전 경제학의 이론들로 봐도 자신의 설명이 맞다는 점을 논증해요. 9개 장의 또다른 역할은 잉여가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있습니다. <개요>와 유사한 내용이지만 헤겔주의 용어를 덜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어요.

요약하면 이래요.

  • 상품엔 교환가치와 사용가치가 있음. 노동도 상품인데 교환가치로만 측정됨. 새 기계로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어도 노동의 가치는 그대로. 이게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노예로 만드는 과정. 기계와 분업으로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지만 그게 생산자의 이득으로 돌아가지 않음.
  • 이전 사회에선 생산성이 증가하면 더 놀거나 다른 가치있는걸 생산. 하지만 교환을 위해 생산을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생산성이 증가하면 상품 교환가치가 낮아짐. 영세업자는 임금 노동자가 됨. 임금은 최소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음. 결국 대다수는 생산성 증가로부터 아무 이득을 못 얻음.
  • 자본가는 교환가치에 기반하여 노동력을 구매하고 사용가치만큼 뽑아냄. 이 차이가 잉여가치. 반나절만 일해도 하루치 생산이 가능하다면 반나절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 시간socially necessary labour-time’. 나머지는 잉여 노동이자 강제노동. 노예제와 다른 점은 강제성이 감춰졌다는 점 뿐. 살기 위해 일하는 동안은 인간이 자유로운 상태가 아님. “자유는 오직 필요에 의해서만 노동하고 외적인 소모expendiency가 없을 때에야 시작된다.”
  • 원시사회에선 재산을 공유.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서/자신의 생산물에서 소외되지 않음. 단 생산력이 낮아 많은 시간 노동함. 생산력 증가로 봉건 사회 도래. 농노는 지정된 시간동안 지주를 위해 일하고 나머진 본인을 위해 일함. 단 살기 위한 노동만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기에 자유롭지 않음.
  • 생산력이 크게 증대된 현대사회에선 인간의 자유도 증대되어야함. 하지만 자본주의체제에선 노동계급이 자본가의 조건에 따라 일하지 않으면 굶어야 하기에 자유가 더 억압됨.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만들 수 있는 조건만을 제시. 자본가가 모두 악랄해서가 아니라 자유경쟁이 자본가를 강제하기 때문.

그 귀결을 기록한 <자본> 10장은 가장 주목할 부분이라고 합니다.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더 많은 노동을 쥐어짜고, 그 결과 7세 아동이 하루 15시간을 일하게 됩니다. 마르크스는 “양도불가능한 인권” 같은 말만 좋은 구호보다, 법적으로 노동 시간을 제한하는 것이 노동 계급에겐 훨씬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나머지 장들은 분업이 노동을 단순화하여 노동자를 기계처럼 만든다는 점, 산업화에 의한 가내공업 몰락과 수작업노동자의 굶주림, 자본주의에 의해 만들어진 무직자의 “산업적 예비군”과 극심한 빈곤 등을 다양한 실증적 사례와 함께 설명해요.

<자본> 1권 끝부분은 자본주의의 자기몰락을 다룹니다. 한편으론 자본가들의 경쟁으로 점점 더 소수의 독점자본만 남게 되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계급의 억압과 착취exploitation가 점점 커집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특성상 노동계급은 자본가보다 수가 많고 잘 조직화되어 있으니 댐이 곧 무너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로 인한 혁명의 결과는 과거의 사유재산 형태로 돌아가는 대신, 협력 및 땅과 생산수단의 공유 형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 변화는 오히려 쉬울 것인데 이미 모든 사적 재산이 강제수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은 일은 소수의 사람들(자본가)로부터 대중이 이를 다시 강제수용해오는 것입니다.

2권은 경제 위기의 기원 등 자본의 순환에 대한 기술적 내용을 다룹니다. 3권은 1권의 내용에 대한 반론들에 대응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고 해요. 싱어는 2권과 3권은 1권에 비해 덜 흥미롭다고 말합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마르크스, 엥겔스 그리고 이후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자본>이 경제과학science of economics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싱어는 그렇게 보면 비판할 점이 많다고 해요. 예를 들어 싱어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모두 실증적으로 반박되었다고 말합니다.

  • 모든 이익은 인간 노동에서 비롯된다는 주장. 기계 등으로 잉여가치를 더 키울수는 있으나 이익을 만들어내는건 살아있는 노동living labour.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류. 모든 노동이 기계로 대체되어도 이익은 발생.
  • 임금이 최소수준으로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는 주장
  • 이익율이 감소한다는 주장
  • 경제위기가 점점 더 심각해진다는 주장
  • 점점 더 많은 이들이 노동계급으로 몰락한다는 주장
  • 자본주의는 임금하락을 위해 극빈실업자로 구성된 산업적 예비군을 필요로 한다는 주장

(뀨: 이 주장들이 실증적으로 반박되었나요? 자본주의체제에서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면 그 이유는 적어도 일부는 마르크스의 영향으로 복지제도 등 각종 사회 안전망이 도입되었기 때문인건 아닐까요?)

그렇다면 <자본>은 경제학 모르는 독일 철학자의 엉터리 이론일 뿐일까요. 싱어는, <자본>이 경제과학이고 일부의 평가처럼 후기-리카드도주의를 따르는 경제학 분과라고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싱어는 이 책이 엉터리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책은 아니지만) 좋은 자본주의 비판서라고 평가합니다. 마르크스가 고전 경제학을 비판한 이유는 자본주의의 결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의 주장들을 과학 이론으로 보고 검증하면 문제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체제에 의해 만들어진 사회를 생생하게 묘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작업은 사회를 완전 다르게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은 예술작품이자 철학적 고찰이자 사회비판입니다. 그리고 <자본> 또한 이러한 글쓰기가 가지는 모든 장점과 단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의 작업은 자본주의를 그림 그림이지 자본주의를 찍은 사진이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제9장. 공산주의와 혁명Communism and revolution

혁명은 어떻게 달성되나

마르크스 장례식장에서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혁명가였고 혁명에 기여하는걸 사명으로 여겼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그를 이해하려면 두 가지 질문이 필요합니다.

  1.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어떻게 전복될거라 보았나
  2. 그 이후의 사회는 어떠한 사회일거라 보았나

<공산당선언>에서는 기존 사회에서 내전이 일어나고 이게 혁명으로 번지며 부르주아지를 폭력적으로 몰아낼 것이라고 썼어요. 하지만 1872년 네덜란드에서 쓴 신문 기사에서는 미국/영국/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에선 평화적인 전이 가능성도 있다고 언급합니다. 엥겔스의 표현에 따르면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전이입니다.

20세기 유럽 민주국가의 공산당들은 사민주의자들과 연합하여 평화적 개혁을 하길 거부했어요. 복지정책 등 사민주의적 개혁이 자본주의를 더 오래 지속시키고 혁명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나치의 의석 확보 및 히틀러의 집권을 막지 못하게 됩니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일10시간근로 입법 등 노동자 복지향상을 지지했습니다. 단, 복지향상이 목적은 아니고 이를 통해 노동자가 계급을 형성하고 정당을 결성하여 “진짜 과실”을 맺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고 해요.

(뀨: 이런 생각은 동물 복지에 대한 제 생각이랑도 비슷해요. 육식주의 사회에서의 ‘동물 복지’는 기만적임을 알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 기만적 복지라도 확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마트에 ‘복지란’이 마치 ‘유기농’처럼 진열되고 복지란이 윤리적으로 더 좋은 것이라고 대중의 인식에 자리잡을수록 언젠가 그게 기만이라는 사실 및 동물 학대의 실상을 알게 된 개개인이 느낄 심정 변화도 더 커질 것이고, 따라서 동물해방운동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게다가 아무리 기만적인 복지라도, 동물 당사자에겐 없는 것 보다 조금이라도 나을테고요. 다만 이 주장에 확신을 못하는 이유는, 기만적 복지가 육식주의 이데올로기의 수명을 더 연장시키는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마르크스는 공산주의를 설명하길 주저함

마르크스는 혁명을 통해 공산주의사회가 도래할 것으로 여겼어요. 문제는 그가 생각한 공산주의사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공산주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 설명을 피했습니다.

그는 현실의 문제를 설명하고 노동계급의 각성을 도우면서 역사적 필연인 혁명의 도래를 기다리고자 했습니다. 유토피아 사회주의자처럼 구체적 미래를 예단하려 하지도 않았고, 경제적 토대가 무르익지도 않았는데 혁명 모의를 하여 사회주의정부를 수립하는 식으로 역사를 구부리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마르크스가 한 말들

공식 입장은 그랬지만 그가 공산주의에 대해 아무 말도 안한 것은 아녜요.

1844년 <원고>에서는 “역사의 수수께끼”가 풀렸고 그게 공산주의이며 다양한 충돌(인간-인간, 인간-자연, 자유-필요, 개인-종)이 해소된다고 말했습니다. 일상적 의미의 유토피아에 가까워 보입니다.

1846년 <독일 이데올로기>에서도 유사한 설명을 합니다. 분업이 없으니 좁은 역할을 강요당하지 않고 아침엔 농사짓고 저녁엔 신문에 기고하는 등 자유로운 활동을 할 것이고,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충돌하지 않으리라고 봤습니다. 개인과 사회의 충돌은 필연이 아니라 역상 특정 단계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했고, 자본주의 사회에선 사유재산과 분업이 강조되며 충돌이 극대화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어떻게 이 충돌을 해소하리라 보았을까요?

하나는 사유재산 폐지입니다. 하지만 사유재산이 없어지더라도 개인-사회 충돌이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말해요. 소유하지 못한다면 남들보다 조금 더 소비하려고 하거나, 남들보다 조금 덜 노동하려고 할 것이기(특히 일이 힘들거나 위험하다면)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물사관에 따르면 욕심/개인주의/질투 등 관념은 경제적 기반이 바뀌면 변형될 수 있습니다. 사유재산과 사적생산수단이 공유재산과 사회적생산으로 바뀌면 이러한 관념들(욕심 등)도 사라질 것이라는게 마르크스의 주장입니다. 새 시대에는 새로운 윤리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마르크스의 윤리학

레닌 등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적 체계이며 윤리적 판단과 무관하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마르크스는 공산주의혁명이 자본주의를 전복할 것이라고 말할 뿐 아니라 그게 바람직하다고도 말했습니다. 그의 윤리적 견해는 소외로부터의 완전 해방을 주장하는 역사관 전반에 얽혀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가 윤리적 판단과 무관하다는 견해는 마르크스가 도덕성morality을 종교나 법과 마찬가지로 부르주아지의 편견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혁명이 완수되고 공산주의사회가 도래했을 때 발생할 ‘진정한 인간 도덕성(엥겔스의 표현)’이란 무엇일까요.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이 않아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자에겐 노동계약을 할 법적 자유가 있으니 노동계약은 자유이며 착취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이는 상부구조에 의해 세상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는 것일 뿐입니다. 공산주의사회의 상부구조는 생산 체계는 착취를 감추지 않을 것이고 이런 식의 거짓의식false consciousness이 없다고 합니다. 노동자에 의한 혁명은 모든 인류를 해방시키므로, 이렇게 도래한 세상의 상부구조는 진정으로 만인을 위한 관념들로 구성될 것입니다. 청년헤겔주의자의 주장대로 도덕적 환상은 종교적 환상과 함께 파괴됩니다.

공산주의 도덕은 기존 도덕과 상당히 다를 것입니다. 싱어는, 심지어 만인에 대한 동등한 고려를 주장하는 공리주의와도 다를 것이라고 말해요. 마르크스는 다른 윤리 이론과 마찬가지로 공리주의도 비판했습니다. 단 비판이 ‘행복의 극대화’라는 기본 전제를 향하는 것은 아니며, 그저 ‘소박하고 상투적a homespun … commonplace’이라고 말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에게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자고 제안하는건 종종 스스로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라면 개인의 이익과 전체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을테니 이런 문제도 사라질 것입니다.

(뀨: 관념들의 토대인 경제 체제를 바꾸지 않고서는 그 위에 어떤 관념을 올려놓아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이야기라고 이해했어요. 즉,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공리주의를 올려놓더라도 ‘행복의 총합 극대화’라는 목표를 실천하기 위해 때론 개인이 희생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하는걸 인간이 견딜 수 없으리라는 뜻 같아요. 결국 공산주의 체제를 토대로 하여 개인의 이익과 사회의 이익이 상충하지 않도록 만들어야만, 공리주의이건 뭐건 그 위에서 돌아갈 여지가 있다는 말 같습니다. 공리주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공리주의: 짧은 입문서’ 요약을 참고해주세요.)

공산주의적 풍요abundance와 정부의 소멸withering away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에 대해 말한 모든 것은 물질적 풍요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사회의 마지막 단계라 자본주의의 생산력 증가를 그대로 물려받고 더 향상될 것이라고 말해요. 생산은 모두의 이익을 위해 협력적으로 계획될 것이고요. 따라서 과잉생산에 따른 위기도 없고, 모두가 고용될 것이며, 노동 시간은 크게 줄고, 잉여가치의 착취 없이 노동자는 사용가치에 따른 임금을 받고, 경제가 우리를 통제하는게 아니라 우리가 경제를 통제하게 될 것입니다.

물질적 풍요와 인간 본성의 변화로 인해 정부는 사라질 것이나 즉시는 아니라고 합니다. 우선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를 폐지하기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 시기가 필요해요. 사회주의적 생산으로 대체되면 계급에 의한 분리 및 개인-사회 사이의 충돌도 사라집니다.

정치권력은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억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므로 이 또한 함께 사라집니다. 가장 산업화된 국가들이 먼저 공산화될 것이므로 다른 국가의 침략을 걱정할 이유도 없습니다. 억압에서 해방되고 이해 충돌도 사라지면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서로 협력할 것입니다.

군사력에 기반한 국가 체제도 ‘사라질 것wither away’입니다(엥겔스의 표현). 국가의 자리는 개개인의 자유로은 개발이 모두의 자유로운 개발을 위한 조건이 되는, 그러한 연합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제10장. 마르크스는 옳았나?Was Marx right?

마르크스의 이론이 과학적 발견이 아니라는 견해는 이미 밝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의 이론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하며 이에 기반하여 자본주의의 미래를 예측했으니 이 측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다고 (싱어는) 말합니다. 마르크스의 주요 예측들은 이래요.

  1. 자본가들은 점점 더 부유해지지만 노동임금은 거의 최소수준을 유지할 것
  2. 영세자영업자들은 노동자가 되고 자본가의 수도 점점 줄어들 것
  3. 이익율은 점점 줄어들 것
  4. 가장 산업화된 국가들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기 시작할 것

싱어는 역시나 이 주장들 중 맞은게 하나도 없다고 말합니다.

(뀨: 마르크스주의적 요소를 반영하여 일부는 ‘개선’되었고 일부는 여전히 진행중인건 아닐까요? 게다가, 예측이 사회에 공개되었기 때문에 사회에 인과적 영향을 미치는게 뻔한 상황에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는 그 여파가 특히 컸다는 점이 잘 알려진 상황에서, 예측이 틀렸으니 신뢰성이 낮다고 평가하는건 너무 허술한 논증이라고 생각해요.)

싱어는, 마르크스를 헤겔과 마찬가지로 과학자가 아닌 철학자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주장합니다. 철학으로 보면 그의 작업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역사와 사회적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꿨고 자유에 대한 이해를 더 깊어지게 만들어줍니다. 당대 관점에선 명시적 강압이 없다면 자유로운 것이라고 말했으나 이는 제약없는 자본주의와 잘 어울리는 관점일 뿐입니다. 마르크스는 아무도 우리를 명시적으로 강압하지 않으나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사회경제적 구조를 우리가 제어할 수 없기에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우리는 우리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어렵다고 말합니다. 마르크스가 홉스, 로크, 루소, 헤겔과 함께 주요 정치철학자로 나란히 선다면 이는 자유에 대한 자유주의적 규정을 비판한 업적에서 기인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제안한 대안적 자유 개념도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회와 경제를 제어하기 위해 필요한 개인 간의 협력을 어떻게 이뤄낼 수 있을까요.

싱어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합니다. 도시로 출퇴근하는 노동자가 모인 외곽 마을이고 모두 자기 차를 이용하니 도로가 막힙니다. 회의를 통해 모두 버스를 타기로 협의해요. 하지만 사람들은 버스보다 혼자만의 공간인 자동차를 선호하죠. 모두가 버스를 탄다면 나 하나쯤 자동차를 타도 도로가 안 막힌다고 생각하기에 자동차 이용자가 다시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버스를 이용하는 다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양심에 맡겨야 할까요, 자동차 타는 소수가 버스를 타도록 강제해야 할까요. 전자의 경우 약속이 와해될 수 있습니다. 후자의 경우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버스 회사가 독점 기업이라면 더 위험해요.

레닌이나 스탈린은 마르크스의 이름으로 독재를 하였으나(위 출퇴근 예시에서는 후자에 해당), 마르크스는 인간의 자유를 대단히 중시했기에 레닌/스탈린의 노선에 반대했을 것입니다. 마르크스가 1930년대 러시아에 있었더라면 분명 숙청 당했을 것입니다.

철학에의 두번째 기여는 인간 본성에 대한 관점인데 이 또한 자유에 대한 그의 생각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인간 본성이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라 바뀔 수 있다고 봤어요. 공산주의사회에선 욕심/개인주의/야망 등이 없어질거라 보았고요. 싱어는, 그의 이론이 과학적이진 않으나 인간이 이용하는 도구와 정치/종교 등 서로 다른 분야 사이의 연결성을 탐구하는 토대를 제공하고 인간의 지적/영적 삶이 경제적 토대와 독립적일 수 없음을 확고히 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평가해요. 실제로 사회학/역사학 분야에 많은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관점을 지나치게 극단까지 끌고간 점은 문제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그의 기대만큼 유연하지 않다고 말해요. 경제체제 변화나 물질적 풍요는 인간의 개인주의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하는데, 기본 욕구가 만족되면 새 욕구가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옷이 아니라 예쁜 옷을 원하고, 쉼터가 아니라 부와 취향을 뽐낼 집을 원하니까요. 서로 다른 사회에서는 개인주의적 욕구가 다른 형태로 표현되지만 그렇다고 욕구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근본적 욕구의 표현 양태가 바뀔 뿐입니다. 소련 공산주의 시대의 경우에도 고위 장교만 이용할 수 있는 특별한 가게가 있었으며, 다른 모든 공산국가가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뀨: 인간본성에 대한 싱어의 견해는, 제가 지금까지 그의 여러 책에서 읽은 바로는, 사회생물학/진화심리학적 견해에 가까워요. 이 학파는 인간본성을 지나치게 고정적인 것으로 보고요.)

공산주의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그간의 시도들로부터 배울 점은 무엇일까요?

인간본성이 사회적 관계에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이지만 거의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본성적 요소들도 있으며 사회관계 혹은 경제적 토대를 바꾼다고 이를 다 제거할 수는 없다는 점입니다. 마르크스의 이러한 오해는 그의 이론을 따른다고 주장했던 여러 공산주의 사회가 왜 실패했는지 일부 설명해줍니다. 사회경제적 조건이 인간 본성의 어떤 측면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수많은 과학적 근거들이 그의 시대엔 없었습니다.

그는 경제적 토대를 바꾸면 본성도 변하리라 봤어요. 하지만 그 가정이 틀렸다면 혁명 이후에도 결국 다른 형태의 소외가 지속될 것입니다. 본성에 대해 우리가 아는만큼 알지 못했기에 그를 비판할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에 시도된 공산주의 사회와 그의 비전 사이의 괴리는 본성에 대한 몰이해에서 어느 정도 기인한 면이 있다고 말합니다. 스탈린, 마오쩌뚱, 김일성, 폴 포트(뀨: 캄보디아의 정치인. 집권 중 반대파 200만명을 숙청하는 등 악명 높음) 등은 마르크스보다는 그의 반대자였던 바쿠닌의 ‘독재에 대한 악몽’의 현현에 가까웠습니다.

추가로, 마르크스는 가장 진보된 산업국가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으나, 성공한 첫 혁명은 유럽의 주요 국가 중 가장 덜 산업화된 러시아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로인해 “잃을 것은 쇠사슬 뿐인” 노동자들이 그보다 훨씬 다수인 시골의 지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는 비극이 일어나요. 이후의 혁명들도, 소련의 영향력 하에 놓였던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약간 혹은 거의 산업화되지 않은 지역들에서 일어납니다. 중국, 북한, 베트남, 쿠바, 캄보디아, 라오스. 이 모든 사례에서 공산정부는 독재에 가까웠어요.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낭비적이고 비합리적이며 우리를 통제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통찰은 여전히 유효해요. 그러나 우리는 이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는 일은 마르크스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는걸 알고 있습니다.

제11장. 마르크스의 이론은 여전히 적절한가?Is Marx still relevant?

마르크스의 명성

사후 몇십 년간 그의 저작은 점점 더 유명해집니다. 20세기 초, 특히 유럽에선 죄파의 지배적 사상이었고, 그의 업적을 추앙하는 지역의 크기를 기준으로 보면 1945년에 정점을 찍었으나 1991년 소련의 몰락을 기점으로 하락합니다.

현재 가장 중요한 국가는 중국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요성에 대한 논의는 중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중국의 정치이념은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뚱, 덩샤오핑 등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는 ‘중국적 특성을 반영한 사회주의’라 불려요.

중국은 1978년 개혁으로 사기업 설립을 허용하는데, 이를 마르크스주의의 붕괴라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덩샤오핑은 ‘쥐만 잘 잡으면 흰고양이나 검은고양나 상관 없다’고 말했는데, 사기업이건 공기업이건 필요한 생산을 잘 하면 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견해는 마르크스의 주장과 어긋납니다. 중국은 입으로만 마르크스를 따른다고 말하는걸까요?

1978년 개혁은 극도로 성공적이었습니다. 8억 인민을 가난에서 구제했습니다. 오늘날 중국은 자본주의 국가에 매우 가까워 보입니다. 시장경제가 활발하고, 증권거래소는 세계3위권이며, 미국보다 억만장자(달러기준)가 더 많습니다. 부의 분배 문제는 미국보다 심각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에 시진핑 주석은 마르크스를 재차 강조하는 연설을 합니다.

싱어는 마오쩌뚱 계획경제 당시의 극도의 빈곤, 덩샤오핑의 경제 개방 이후의 가파른 경제 성장 등이 마르크스주의 경제의 한계를 보여주는 설득력있는 근거라고 평가합니다.

불평등

2007년 세계경제위기 당시 금융산업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재귀적 대출에 대한 규제 논의가 활발했어요. 이는 2011년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으로 번졌으며 이들의 비판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과 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은 큰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사그러들었으며 자본주의 체제는 일부 야바위꾼과 개별 자본가들의 무능을 견뎌냈으며, 경제위기는 이번에도 자본주의체제의 회복력을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당시 제기된 불평등 문제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스 피케티의 베스트셀러 “21세기 자본”을 탄생시킵니다. 피케티의 분석은 마르크스와 달리 주류 고전 경제학 체제 내에서 이루어집니다. 피케티는 자본투자회수율이 일반적으로 경제성장률을 상회한다고 주장해요. 그 결과 불평등이 확대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2차대전 이후 부자에게 더 많은 과세를 하고 빈자의 사회보장을 확대하는 움직임이 생겼어요. 경제학자 사이먼 커즈넷은 국가가 부유해지면 불평등이 해소된다고 하였으나, 피케티는 이게 냉정시대의 동화에 불과하다고 평가해요. 실제로 1975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성장이 둔화되자 상속세가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 낮아지고 불평등이 다시 심화됩니다. 피케티에 따르면 우리는 마르크스 시대 수준의 불평등으로 퇴행 중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을 선호하는 이들의 관점에서 피케티의 분석은, 부자가 부자인 이유는 더 생산적이고 더 기술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자에 대한 좋은 반론입니다. 자본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더 쉽게 부자가 된다는 점을 이론적/실증적으로 보였기 때문이에요. 피케티의 분석은 또한, 자본주의가 불평등을 줄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적 분배 전략은 무의미하거나 오히려 방해적이라는 신고전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한 효과적 반론이기도 해요. 피케티는 자본세가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합니다.

싱어는, 마르크스와 피케티 사이에 여러 공통점이 있으나 이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해요. 마르크스는 노동임금이 최소 수준에 머무를 것으로 보았던 반면, 피케티는 느리더라도 서서히 오를 것으로 보았습니다(단 자본소득의 증가는 더 빠르기에 불평등은 확대됨).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체제가 자체 모순으로 인해 혁명에 의해 전복될 것이라고 보았으나 피케티는 자본주의체제가 영속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상반된 두 의견이 모두 옳을 수는 없습니다.

세계화 시대의 마르크스

<공산당선언>에서는 자본주의체제의 힘은 매우 강력하며 국가나 대륙의 경계에 제한받지 않고 확장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데, 실제로 이 현상은 오늘날에도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르크스의 예측과 사뭇 다릅니다.

그는 자유무역이 확대되고 자본주의체제가 전지구적으로 확대되면 세계의 노동계급이 단결하여 반자본주의 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보았어요. 그의 말대로 자본주의체제의 영향력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사실인 반면, 국제적 노동계급의 단결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가 선진국의 노동자가 다른 국가의 노동자를 착취할 것이라는 점을 예측하지 못했다고 주장해요. 좀 더 긍정적인 이들은 결국 언젠가 노동자들이 이를 깨우치고 단결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이 견해에 따르면 마르크스는 옳았으나,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 뿐입니다.

이런 견해가 타당할까요? 현재의 세계경제가 정말로 자본가에 의한 세계 빈곤층 착취인지 살펴보면, 2017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부자인 8명이 재산이 가장 가난한 사람 절반(약 36억명)의 재산을 합친 것과 동일하다고 해요(국제 지원 단체 Oxfam의 조사). 다만 축적된 부가 가난한 이들을 억압한 결과인지, 가난한 이들의 삶이 더 빈곤해졌는지 등에 대해서는 더 상세히 살펴봐야겠으나, 세계의 경제 질서가 부자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음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말해요. 싱어는 자본주의가 불공정하고 잔인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마르크스의 관점과 거의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해요. 그가 말한 극빈층은 월드뱅크 기준으로 오히려 줄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점에 있어서 마르크스의 예측은 틀렸으나 아무튼 이는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마르크스와 환경 위기

21세기 인류는 기후 위기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생태사회주의자ecosocialist들은 자본주의가 자연을 포함한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기에 환경 파괴를 막으려면 자본주의를 전복해야 한다고 주장해요.

그린스Greens는 자본주의에 대한 생태사회주의자의 우려를 공유하지만 마르크스주의가 해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이들은 마르크스가 산업화에 의해 이미 가해진 환경 파괴에 대해 아무 언급도 없다는 점, 자연파괴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일어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자본주의 전복을 통해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전략의 문제는, 자본주의가 빨리 전복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기후위기의 티핑포인트는 임박해 있으며 이 시점이 지나면 인간의 환경 파괴가 완전 중단되어도 기후위기를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한편, 화석연료로 이익을 얻는 자본가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거나 확대하고자 하는 현상 등을 분석할때 마르크스의 이론이 유용할 것입니다.

‘중요한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 하지만 어떻게?

(뀨: <논제들> 중 11번, “그동안 철학자들은 세상을 다양하게 해석하기만 했다. 하지만 중요한건 세상을 바꾸는 일이다”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대한 공산주의의 승리가 다가오고 있고 그 결과 더 좋은 세상이 올거라고 잘못 예측하여, 수백만 추종자들을 잘못 이끌었고 국제적 공산주의 운동이 수그러진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싱어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여전히 많고 효율적 비영리 기구들이 많은 사람들의 기부를 통해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그 와중에도 여전히 많은 좌파들은 이런 운동에 동참하기보단 공산주의 혁명만 외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 태도엔 두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해요.

  1. 세계 경제 질서를 어떻게 전복할 것인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음
  2. 실질적으로 자본주의에 비해 더 나은 체계가 무엇인지 보여준 사람이 없음. 공산주의 경제체제 중 어떤 사례도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보다 더 생산적이고 풍요로운 사례가 없었음. 작은 스케일의 실험들도.

칼 포퍼는 점진적 사회 개선piecemeal social engineering을 주장했습니다. 작은 규모의 변화를 이루고 그 성과를 관찰한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길 반복하는 방식입니다. 점진적 변화는 상시 실행할 수 있어요. 반면, 공산주의 혁명은 적시를 기다려서 한 방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려 하기에 실패 위험이 너무 높다고 말합니다.

포퍼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저술한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점진적 개선이 있어 왔습니다. 공공주거,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풍요로운 국가들의 보편적 의료보험, 공공무상교육 등. 실험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예를 들면 몇몇 국가는 보편기본소득 제도를 실험하고 있어요.

몇몇 이들은 로봇과 인공지능으로 인해 인간 노동력의 필요성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런 날이 오면, 마르크스의 견해 중 경제적 이익이 인간의 지적/정치적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여전히 타당할 것이지만, 불가피한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이 올 것이라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뀨: 로봇에 의한 인간 대체는 그 자체로 좋은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로봇 인간 대신 생산한 가치가 얼마나 정의롭게 분배되느냐의 문제가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분배 정의의 실현은 요원하고, 보편기본소득제도 등이 생각보다 빠르게 정착되지 않는다면 부의 편중 문제나 실업 문제가 더 가속화될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