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도덕철학자 피터 싱어의 입장 및 그의 저서 <동물 해방>의 주요 내용이 국내에 잘못 알려진 사례가 자주 눈에 띕니다. 몇 가지 주요한 오해들을 바로잡고자 합니다.

다양한 오해들

예를 들어 권기복 작가님의 브런치 글 <동물은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에서는 피터 싱어는 ‘동물복지론’을 주장하며 만약 인간과 동물의 이익이 충돌하면 인간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고 말합니다. 그에 비해 ‘동물권리론‘을 주장하는 톰 리건은 이익이 상충하는 경우에도 동물의 이익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더 ‘나아간’ 입장을 갖는다고 소개합니다. 싱어는 “동물들이 더 살기 좋은 동물 우리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반면, 리건은 “아니야! 아예 동물 우리를 업애자!”고 한다며 대비시키고 있습니다.

“채식하지 않아도 괜찮아”의 저자 이기훈님은 북 저널리즘: 세터데이 에디션에 발행한 글 착학 육식이 가능할까?에서 리건은 동물의 살생을 비판하는 반면 싱어는 동물의 고통에만 집중한다고 주장하며 감각이 없는 동물이면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박김수진 작가님의 브런치북 <동물권 입문><03화 ‘종차별주의’를 넘어, 피터 싱어와 톰 리건>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피터 싱어가 그의 저서 <동물 해방>에서 전개한 동물 해방론은 시혜적이고, 인간과 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지 않으며, 육식을 용인하고 도살 자체보다는 고통에 더 집중하고, 공장식 축산의 종식을 주장하기 보다는 복지 증진에 집중하는 등의 한계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싱어의 이러한 제한적 입장에 대한 대안으로 톰 리건이 <동물권 옹호>에서 제안하는 의무론적 권리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와 유사한 오해는 심지어 고등학생들을 위한 수능대비 문제집의 예상 문제 및 그 풀이에서도 나타나며, 일부 수능 강사들의 강의에서도 반복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강사들은 리건의 권리론이 싱어의 공리주의에 비해 훨씬 강력하여 동물에게 투표권과 같은 법적 권리를 부여할 이론적 기반이 된다는 식으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물 해방>의 실제 내용과 비교해보면 위 주장들은 싱어의 주장과 다르거나 다소 과장된 것으로 보입니다. 위에서 제시한 각 주장을 짧게 인용하고 각 주장이 싱어의 실제 입장과 다르거나 과장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를 정리해보았습니다.

동물 해방론이 시혜적이라는 주장에 대하여

다음은 박수진 작가님의 글입니다:

싱어는 … 인간동물은 비인간동물에게 더 많은 자애와 보살핌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동시에 싱어의 도덕적 가치는 비인간동물의 본원적 가치에 집중하기보다, ‘고통의 감소’ 측면을 강조함으로써 비인간동물에 대한 시혜를 부각시킵니다.

위 인용에 따르면 싱어는 “자애와 보살핌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시혜주의적(월등한 인간인 우리가 열등한 동물에게 배려를 베풀어야 한다)이거나 온정주의적(불쌍한 동물을 사랑해주고 따뜻하게 보살펴야 한다)인 태도는 오히려 싱어가 <동물 해방>의 서문부터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에서 꾸준히 반복하여 비판하는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동물 해방>의 <1975년판 서문>에서는 동물 해방은 온정주의와 무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동물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그들이 독립적이고 지각 있는 존재로 대해지길 바라고,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쓰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 이 책은 소위 “귀여운” 동물을 향한 동점심에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 이 책 어디에도, 감정에만 호소하고 이성에 의해서 뒷받침되지는 않는 주장은 담겨 있지 않다.

6장에서도 감정에 호소하는 접근을 의도적으로 배제하였다고 반복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나는 감정이나 감상보다는 이성에 호소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내가 다른 동물에 대한 친절한 마음이나 감상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더 보편적이고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싱어는 인간이 동물을 보살피고 베풀어야 한다는 시혜적 관점에도 반대합니다. 예를 들어 6장에서 ‘인간은 동물이 겪는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육식 동물을 제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짧고 간단한 답은 이렇다. 인간이 다른 종을 “지배”하고 있다는 태도를 견지하지 않는다면 다른 종에 대한 간섭을 멈춰야 한다. … 폭압자의 역할을 포기하고, 신 놀이도 그만 두어야 한다.

추측컨데 싱어가 “자애와 보살핌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오해의 일부는 싱어의 문장들이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시혜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인 표현들로 바뀐 점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연암서가에서 2012년에 펴낸 <동물 해방 - 개정완역판>과 영어 원서 40주년 기념판을 일부 대조해보았습니다. 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번역서는 원문의 표현들을 일관되게 시혜주의적이거나 온정주의적인 표현으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급하게 대조한 것이라 포괄적이지는 않으나 몇 가지 사례를 나열해보겠습니다.

  • 번역: 인간 평등의 토대가 되는 윤리 원리가 배려의 범위를 확장하여 동물도 동등하게 배려하라고 요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p27)
  • 원문: why the ethical principle on which human equality rests requires us to extend equal consideration to animals too

위 문장은 1장의 부제목입니다. ‘equal consideration’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로, ‘동등 고려’ 혹은 ‘동등한 고려’로 번역하면 좋았을텐데 종종 ‘배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동등 고려는 이후 모든 주장의 토대가 되는 원칙이기에 책 전반에 걸쳐 반복하여 나오고 있으나, 일부는 ‘배려’로 번역하고 일부는 ‘고려’로 번역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는 과학자들이 갑자기 동물들을 더욱 배려(care)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p161)”와 같이 싱어가 비판적 의미로 사용한 동물에 대한 ‘care(보살핌)’도 ‘배려’로 번역하고 있어서 혼란이 가중되는 면이 있습니다.

  • 번역: 한때는 닭들이 각각의 개체로 대접을 받았다. –p185
  • 원문: Once, chickens were individuals.

위 번역문에는 닭들이 “대접을 받았다”는 시혜적 표현이 나오지만 원문에는 그런 표현이 없습니다. ‘대접을 받는다’, ‘혜택을 받는다’ 등의 번역문은 다른 부분들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아래의 사례도 유사합니다.

  • 번역: 고통 없는 동물 사육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의 여부를 떠나 푸줏간과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고기가 사육 기간 동안 배려의 대상으로 대접받지 못한 동물들의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p279
  • 원문: Whatever the theoretical possibilities of rearing animals without suffering may be, the fact is that the meat available from butchers and supermarkets comes from animals who were not treated with any real consideration at all while being reared.

위 문장에서 “consideration”은 ‘배려’, “treat”은 ‘대접받다’로 번역되어 시혜적인 느낌을 강하게 줍니다.

심지어는 ‘주장의 근거가 완전하지 않더라도 믿음’이라는 의미를 지닌 숙어인 “benefit of the doubt”를 반복적으로 ‘헤택’으로 오역하고 있기도 합니다.

  • 번역: 그들은 의심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p301
  • 원문: They should receive the benefit of the doubt.

위 문장은 물고기가 고통을 받을 것인지를 논의하는 맥락의 일부이며 “물고기가 고통을 느낄 것이라고 간주해야 한다” 정도로 번역하면 좋았을텐데 숙어를 그대로 직역하는 바람에 뜻이 모호해졌습니다. 또 무언가 배려하여 혜택을 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배려 혹은 그와 유사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이 원문에 없음에도 번역문에는 나타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 번역: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인간에 대한 배려와 동물에 대한 배려가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p373
  • 원문: For the truth is that there is no incompatibility here.

위 사례의 경우 “사실 양자 사이에 충돌은 없다” 정도로 번역해도 될텐데, 해당 문장 뿐 아니라 이 문장이 담긴 문단 전체에 배려로 번역할만한 단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위와 같이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도 원문의 단어들을 그 뜻과 맞지 않는 시혜주의적이거나 온정주의적인 방식으로 오역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띕니다.

  • 번역: … 너그러운 사람 중에서 잡은 물고기가 서서히 옆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안 물가에 앉아 낚시 바늘을 매달며 한 나절을 보내는 것을 유쾌하다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p298
  • 원문: … otherwise decent people can think it a pleasant way of spending an afternoon to sit by the water dangling a hook while previously caught fish die slowly beside them.

‘decent’에는 ‘일반적으로 존경할만하고 도덕적이라고 여겨지는 기준에 따르는(conforming with generally accepted standards of respectable or moral behavior)’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한사전은 ‘점잖은’, ‘품위있는’ 등을 번역어로 제시합니다. ‘너그러운’이라는 뜻은 영한사전에도 없고 영영사전 뜻풀이와도 맞지 않으며 원문의 맥락과도 안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 번역: … 동물에 대한 경멸로 - 따라서 푸대접에로 - 이어지는 –p386
  • 원문: … lead to disrespect - and hence mistreatment - for the animals.

위 번역에서는 학대나 혹사라는 뜻인 ‘mistreatment’를 “푸대접”으로 번역하였습니다. 마치 푸대접이 아니라 제대로 된 ‘대접을 베풀어야’할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성글게만 살펴보아도 위와 같은 문제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위와 같은 문장들로 인해 싱어가 시혜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인 주장을 하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밖에도 ‘animal product’을 ‘육류’로 번역하거나, ‘companion animal’을 ‘반려 동물’이 아닌 ‘애완 동물’로 일관되게 번역하고, ‘may’ 또는 ‘perhaps’를 누락하고 번역하여 조심스럽게 추측하는 문장들을 단정하는 문장으로 만들어버리는 점들이 눈에 띕니다. 특히 1장과 6장에서와 같이 철학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문장들에서는 특별히 섬세한 번역이 필요할텐데 그렇지 않은 점들이 아쉽습니다. 본 논의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으므로 이런 점들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인간과 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주장

다음은 권기복 작가님의 글입니다:

싱어는 공리주의에 영향을 받은 학자로 동물의 이익도 인간의 이익과 동일한 차원에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둘을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 아니라 동물의 본성에 따라 그들의 이익을 인간과 동등하게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 하지만 싱어는 만약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인간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인다.

다음은 박수진 작가님의 글입니다:

그러나 싱어는 종차별을 거부하는 것이 곧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는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지도 않습니다.

인간의 이익과 동물의 이익이 충돌한다면 인간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싱어의 의견이 아니라, 싱어가 명시적으로 반대하는 종차별적 주장입니다. 싱어가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는 말도 사실이 아닙니다.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이지만 부연이 필요합니다.

싱어는 인간의 이익을 동물의 이익에 비해 더 중요하게 여기는 모든 행위를 종차별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인간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은 싱어의 관점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동물 해방>에서 인용해보겠습니다:

(인종차별자나 성차별자와 유사하게) … 종차별자들은 자기 종의 이익 또는 관심사를 다른 종의 더 큰 이익 또는 관심사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걸 허용한다. 각각의 차별은 동일한 패턴을 갖는다. (…speciesists allow the interests of their own species to override the greater interests of members of other species. The pattern is identical in each case.)

또한 싱어가 모든 지각있는 존재가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도 <동물 해방> 1장에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장의 제목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이기도 하고요. 싱어는 평등의 원리는 실질적 같음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존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덕적 규정(prescription)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개별적인 개체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건 없건, 각 개체는 평등하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입니다. 싱어가 제시하는 ‘동등 고려의 원칙(the 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은 이 전제 하에서만 성립됩니다.

한편 싱어가 공리주의 관점에서 모든 생명이 동등한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점은 사실입니다. 약간 부연을 해보겠습니다. 각 개체에는 고유한 관심사(interest)가 있고, 이 관심사에 따라 각 개체를 동등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관심사가 다르면 다른 종류의 고려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날개가 없는 개체에 대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공간’을 고려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지 않다면 결국 어느 순간에 비인간동물을 차별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이 물음 자체가 종차별적입니다. ‘생명의 가치가 동등하지 않다’라는 문장으로부터 바로 ‘그렇다면 인간에게 더 많은 가치가 주어질 것이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니까요. <동물 해방>에서 싱어는 특정 인간 개체가 특정 동물 개체에 비해 더 적은 도덕적 가치를 갖는 상황들에 대해서도 수차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따지면 오히려 톰 리건의 입장이 더 제한적이거나 종차별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싱어와 리건의 소위 ‘보트 논쟁’(The Dog in the Lifeboat: An Exchange)에서 싱어도 이러한 면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싱어에 따르면, 톰 리건은 ‘인간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백만 명의 개를 동물 실험에 써도 된다’는 결론에 이를 수 밖에 없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육식을 용인하며 도살 자체보다 고통에 더 집중한다는 주장

다음은 이기훈 저자님의 글입니다:

레건은 동물이 인간처럼 미래를 설계하고, 과거를 반성하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에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동물 살생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공리주의자인 싱어는 동물의 고통에만 집중한다. 동물이 인간처럼 고통과 쾌락을 느낀다면 도덕적으로 존중해야 하지만, 감각이 없는 동물이라면 먹어도 된다고 말한다.

다음은 박수진 작가님의 글입니다:

싱어는 도살 자체보다 비인간동물에 가해지는 고통을 강조하고… 고통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식의 사육과 도축으로 얻는 ‘육식’을 용인합니다.

싱어는 <동물 해방>에서 육식을 비롯하여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하는 모든 행위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반복적으로 주장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효과적이고 시급한 것은 육식의 중단이라고 말합니다. 다만 현실적인 제약으로 당장 모든 육식이 중단될 수 없으므로 점진적인 개선 또한 중요하게 여길 뿐입니다.

싱어는 도덕적 완벽주의 혹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를 견지하느라 현실에서 아무런 차이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동물 해방> 2장에서 동물 실험과 관련한 최근의 성과에 대해 기술하는 부분을 인용해보겠습니다:

이러한 진전은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생각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동안 동물에 관한여 달성한 성과는 ‘전무’하다. (These breakthroughs resulted from the work of people who found a way around the “all or nothing” mentality that had effectively meant “nothing” as far as the animals were concerned.)

완역개정판 번역서의 해당 부분은 정반대의 뜻으로 오역되어 있습니다. 원문의 “a way round”를 누락하고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진전은 ‘모 아니면 도(all or nothing)’ 식의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노력한 결과다.

싱어가 도살 자체보다 고통에 더 집중한다는 주장도 오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오해의 일부는 번역서의 오역에서 기인하는게 아닐지 추측해봅니다. 책 자체의 의도적 구성에도 어쩌면 오해를 살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서의 오역 문제를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번역서에 의하면 ‘인간이 육식을 하기 때문에 더 많은 소, 닭, 돼지가 태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이건 오히려 동물들에게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육식 옹호 주장에 대해, 싱어가 초판본에서는 반대를 하였으나 개정판에서는 기존의 반대를 철회하는 듯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초판에서는 나는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이에 대해 그다지 확신할 수가 없다. –p384

위 번역에 따르면, ‘육식 덕분에 더 많은 동물이 태어났으니 잘된 것 아닌가?’라는 괘변에 대하여 싱어가 ‘이 말이 정말 괘변인지 이제는 확신할 수가 없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원문에 의하면 싱어는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이 책의 초판에서는 나는 …라는 생각에 근거해서 이 입장에 반대했었다. … 하지만 지금은 (그 근거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 (In the first edition of this book, I rejected this view on the grounds that … . But now I am not so sure.)

즉 싱어는 여전히 위 입장에 확고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다만 반대의 근거로 자신이 초판에서 제시한던 논거가 타당한지에 대한 확신이 없으니 다른 논거들을 통해 반대하겠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후에 이어지는 상당 분량의 본문은 저자가 이 입장에 대해 여전히 반대하는 이유들를 설명하고 있는데 이 부분의 번역에 특히 매끄럽지 못한 문장들이 많아서 아쉽습니다.

다음으로는 책의 구성으로 인해, 마치 싱어가 도살보다는 고통에만 관심이 많은 것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겠다는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실제로 <동물 해방>의 거의 모든 내용은 도살보다는 고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도살에 대한 내용은 1장 후반부에 짧게 언급된 후, 마지막 장인 6장에서야 본격적으로 다루어집니다. 하지만 이는 싱어가 도살을 덜 중요하게 여겨서가 아닙니다. 싱어에 따르면 도살에 대한 논의는 고통에 대한 논의에 비해 철학적으로 깊고 난해한 면이 있습니다. 그런데 싱어가 생각하기에는 당장 고통에 대해서만 따져 보더라도 육식, 동물 실험, 공장식 축산을 비롯한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종류의 억압을 당장 그만두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득할 수 있습니다. <동물 해방>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내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므로 지루하고 복잡한 논의는 의도적으로 뒤로 미룬 것으로 보입니다.

싱어는 <동물 해방> 1장에서 도살 문제를 뒤로 미루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도살이 그릇된 행위임인 이유를 설명하기는 더 복잡하다. 이 문제를 일부러 덮어두고 있었고 앞으로도 당분간 미뤄둘 것인데, 그 이유는 인간이 다른 종에 가하는 폭압의 현 상태를 고려했을 때, 단순히 고통 및 쾌감에 대한 동등 고려 원칙만 적용해도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행하는 모든 종류의 주요 학대를 고발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장식 축산의 종식을 주장하기 보다는 복지의 증진에 집중한다는 주장

다음은 권기복 작가님의 글입니다:

…동물권 이론에는 크게 두 축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바로 ‘동물복지론’과 ‘동물권리론’이다. 대표적인 동물복지론자는 피터 싱어로서 그는 <동물 해방>으로 동물보호 운동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한 인물이다. … 반면, 동물권리론은 동물복지론보다 더 나아간다. 동물권리론의 대표 학자는 톰 리건인데, 그는 인간과 동물 모두 ‘삶의 주체’이기에 그들 역시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본다. … 동물복지론과 동물권리론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이렇다. 동물복지론자가 “동물들이 살기 좋은 동물우리를 만들자! (그림의 화자는 피터 싱어)”라고 말한다면, 동물권리론자는 “아니야! 아예 동물 우리를 없애자!” (라고 말한다. 그림의 화자는 톰 리건)

다음은 박수진 작가님의 글입니다:

싱어의 접근 방식은 공장식 축산업의 종식을 주장하기보다, 공장식 축산업 안팎에서 자행되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잔혹한 학대의 종식을 강조하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싱어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공장식 축산 뿐 아니라 육식 자체를 완전히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달성할 수 있는 수단 중 개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베지테리어니즘 또는 비거니즘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육식이 존재하는 한 비인간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의미있게 줄어들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 인용합니다:

육식을 위해 동물을 대량으로 사육하는 한 동물들에게 많은 고통을 주지 않을 방법은 실질적으로 없다. 공장식 축산을 하지 않고 전통적인 축산을 하더라도 거세, 어미로부터의 분리, 사회집단으로부터의 격리, 브랜딩(피부에 낙인 찍기), 도축장으로의 운송, 도축에 이르기까지 여러 고통이 수반된다.

공장식 축산이 없어지고 전통적 축산 형태로 돌아가더라도 여전히 문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싱어가 주장하는 유일한 해결책은 육식의 완전한 중단입니다.

다음으로, 복지의 증진에 대한 싱어의 입장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당장 현실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줄인다는 점에서 복지 증진은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싱어는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하느라 현실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든 악행으로부터 완전무결하게 격리하여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즉 개별 참여자가 ‘아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이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죽 구두, 털옷 등 동물 상품을 소비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그는 6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일관성을 견지한다는 것이 절대적 순수성이라는 표준을 엄격하게 따르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은 그러한 의미를 함축한다고 보지도 않는다. 소비 성향을 바꾸는 것의 요지는, 해당 개인을 악으로부터 격리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 착취에 대한 경제적 동기를 감소시키고 다른 이들도 이에 동참하라고 설득하기 위한 것이다.

둘째, 하지만 싱어는 아무리 ‘인도적인’ 방법을 쓰더라도 종차별은 종차별이고 결코 도덕적으로 정당화될 여지는 없다고 말합니다. 3장에서 인용합니다:

(인도적인 축산은) 계몽적이고 더 인도적인 형태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차별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어떤 국가의 정부도 인간의 이익에 비해 동물의 이익이 덜 중요하다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 바 없다. 이슈는 항상 ‘피할 수 있는’ 고통에 맞춰져 있는데, 이 말은 동일한 양의 동물 제품들이 생산된다는 조건 하에, 그리고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 한정된다.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수단으로 쓸 수 있고, 동물의 살을 비롯한 인간의 각종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을 기르고 죽여도 된다는 가정들은 여태 도전받은 바가 없다.

셋째, 2011년에 동물 복지에 대한 책이 나왔는데 싱어는 이 책의 추천사를 썼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육식의 완전한 폐지와 동물 복지의 향상이라는 주장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는 관점의 문제를 지적합니다:

<동물 해방>에서 밝힌 내 관점을 아는 이들이라면 내가 <축산의 미래>라는 제목의 책에 추천사를 썼다는 걸 알고 놀랄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해방운동은 축산의 미래를 없애는 운동이 아니었던가? 비인간 동물의 관심사에도 동등한 고려를 해야 한다는 원칙이 정당한 도덕적 원칙이라면 축산을 아예 안해야 하지 않는가? 모두가 비건이 되어야 하지 않나? … 나는 <동물 해방>에서 밝힌 입장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 하지만 베지테리언과 비건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육식으로 인한 동물의 고통과 죽음은 더 빠르게 증가해왔습니다. … 운이 좋다면 10년이나 20년 후에 전체 인구의 5% 혹은 10% 정도가 비건이 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육식을 할 것이고 향후 10~20년 동안 고통 받고 살해 당하는 동물의 수는 훨씬 더 늘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 따라서 고통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합니다. (육식의 완전한 폐지와 복지의 향상은)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이는 싱어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싱어는 도덕적 완벽주의 혹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태도를 견지하느라 현실에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경계합니다.

한편, 싱어가 공장식 축산의 종식을 주장하기 보다는 복지의 증진에 집중한다는 주장은 싱어의 논적인 톰 리건이 싱어를 비판하는 논점 중 하나이기도 하므로, 리건의 견해 및 그에 대한 싱어의 반론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자 합니다.

보트 논쟁에서 리건은 자신의 견해는 원천적으로 모든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반면 싱어는 일부 동물 실험이 도덕적으로 정당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동물 실험 폐지론자가 아니라며 비판합니다. 이 논의는 공장식 축산보다는 동물 실험을 사례로 들고 있으나 사례를 공장식 축산으로 바꿔도 논증의 구조는 동일합니다. 하지만 이는 리건의 주장일 뿐이고, 싱어는 이 비판에 대해 이렇게 반론합니다:

리건은 그의 관점과 내 관점 사이의 차이를 강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관점은 동물 실험의 완전한 폐지를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반면 나의 관점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공리주의 관점에서 어떤 실험은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 인해 얻을 수 있는 장점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용인을 해야만 하는 그러한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 (위해를 당하는 동물이 인간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실험들에 논의를 집중한다면, 공리주의적 관점 또한 이해 상충으로 인한 비극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동물을 사용하지 않는 실험 방법의 고안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게 된다. 따라서 과학에서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는 모든 상황에 대한 완전한 폐지는 리건의 목표임과 동시에 나의 목표이기도 하다.

리건은 당장 모든 것을 완전히 폐지하자고 주장하지만 싱어는 시간을 두고 점진적으로 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건이나 싱어 모두 변화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리건의 책 <동물의 권리와 인간의 잘못> 8장에서 인용합니다:

이러한 종류의 변화(사회적 변화)에는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의 헌신적 노력과 협력, 상상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동물권 활동가이자 법학자인 게리 L. 프란시온Gary L. Francione은 싱어가 복지론자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악의적인 왜곡에 근거한 일방적 주장일 뿐입니다. Francione은 “싱어는 동물을 죽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30년 이상 고수해왔다”는 이유에서 그가 복지론적 입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동물 해방> 6장에서 그는 동물을 죽여서는 안되는 이유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 (초판본과 개정판에서 도축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근거가 달라질 뿐, 부당하다는 주장 자체는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프란시온은 공장식 축산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며 동물 복지에 부정적인 DxE는 사실 안티-비건이며 오로지 동물 복지에만 관심이 있다고 왜곡하는가 하면, 동물권을 옹호하고 공장식 축산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했으며 권리론에 입각하여 종차별을 반대하는 톰 리건이 사실은 종차별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의 악의적 왜곡 인용에 대해서는 폐지론자 게리 프란시온의 부도덕한 왜곡 인용을 참고해주세요.

싱어는 동물복지론자이고 동물권 운동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오해일 가능성이 큽니다. 몇 가지 근거는 이렇습니다.

  • <동물 살해의 윤리학Ethics of Killing Animals> 서문에서는 “피터 싱어의 입장은 종종 ‘동물복지론’으로 잘못 간주되곤 하는데, 그 이유는 그가 권리 개념을 이용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말해요.
  • 피터 싱어 스스로 동물권 운동을 하고 있으며, 위에서 인용한 바와 같이 동물 복지는 그저 ‘조금 인도적인 종차별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 미국 동물권 컨퍼런스가 2000년부터 매년 수상하는 “동물권 명예의 전당”이 있는데 피터 싱어는 첫 해인 2000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 가장 권위있는 백과사전으로 알려져 있는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의 현대의 동물권 운동The Modern Animal Rights Movement 항목에서 피터 싱어는 동물권 옹호자proponents로 소개됩니다.
  • 싱어는 2011년에 출간된 축산의 미래The Future of Animal Farming라는 책에 추천사를 썼습니다. 추천사 첫 줄에서 그는 “내가 동물 복지에 대한 책의 추천사를 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랄 것이다. 동물 해방 운동은 동물 복지가 아니라 육식의 완전한 폐지를 주장하는 운동이 아니었던가?”라고 쓰고 있습니다.

피터 싱어가 동물복지론자라는 주장은 매우 이상해보입니다.

리건의 권리론이 싱어에 비해 더 급진적이라는 오해

우선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는 생명의 범위에 대한 싱어와 리건의 관점 차이에 대한 오해를 살펴보겠습니다.

<2020 수능대비 메가스터디 사회탐구 생활 윤리>에서는 이런 설명이 나옵니다:

싱어가 쾌고 감수 능력을 바탕으로 동물의 도덕적 고려를 주장하는 것에 대해 리건은 이러한 입장이 지나치게 협소한 개념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리건에 의하면 동물은 쾌고 감수 능력뿐 아니라, 믿음, 욕구, 지각, 기억, 정체성 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p23, <정답 및 해설>

위 해설에 의하면, 싱어는 동물에게 쾌고 감수 능력(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능력)만 있다고 주장한 반면, 리건은 그에 더하여 믿음, 욕구, 지각, 기억, 정체성 등도 지닌 존재라고 주장한다고 오해할 소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정반대의 잘못된 해석입니다.

싱어의 주장은 쾌락이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모든 동물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리건은 그에 더하여 믿음, 욕구, 지각, 기억, 정체성 등도 지녀야만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동물에게 어떠한 능력이 있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전체 생명 중 어떠한 능력을 가진 생명들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기준을 제시한 것입니다. 따라서 조건이 적을수록 더 많은 생명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 포함하게 됩니다. 싱어의 기준은 최소한 거의 모든 척추동물을 포함하는 반면, 리건의 기준은 일부 포유류를 포함할 뿐입니다.

물론 이렇게만 소개하면 리건에게 지나치게 불공평한 주장이 됩니다. 싱어가 제시한 쾌락과 고통은 필요충분조건인 반면, 리건이 제시한 조건들은 충분조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싱어가 제시한 조건이 리건의 조건에 비해 더 많은 생명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포함한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동물의 권리에 대한 싱어와 리건의 관점 차이에 대한 오해입니다.

몇몇 고등학교 생활 윤리 교과서에서는, 리건은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고 보는 반면 싱어는 동물에게 권리가 없다고 보는 차이가 있다고 짧게 설명합니다. 이 또한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싱어가 동물에게 권리가 없다고 말하는 것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해 없이 이해하려면, 싱어가 인간에게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점을 함께 설명해야만 합니다. 권리에 대한 이러한 입장 차이는 권리론과 공리주의의 차이일 뿐입니다. 싱어는 인간이건 동물이건 간에 “권리”가 있기 때문에 도덕적 고려를 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어떤 개체가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으면 그에 따라 이익 또는 관심사가 존재할테니 이를 차별없이 동둥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 수능 강사들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 해설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어 한준호 강사의 강의에 의하면 리건의 관점이 싱어에 비해 더 급진적인데 왜냐하면 리건은 전통적으로 인간에게만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권리가 동물에게도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인간과 동물이 혼인을 하거나 동물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할 수 있는 수준의 강력한 관점을 갖는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동물에게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곧 동물에게 인간과 동일한 권리가 있다는 주장은 아닙니다. 리건의 <Animal Rights, Human Wrongs> 8장에서 인용합니다:

동물에게 투표를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시민권을 변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관점은 터무니없다. 왜 동물권에 대한 믿음이 이러한 터무니없는 주장을 함축하지 않는지에 대해 권리론적 관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Any view that entails that animals have the right to vote, to marry, and to change their citizenship is absurd. The rights view helps us understand why belief in animal rights does not have these absurd implications.)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싱어 역시 <동물 해방>에서 동일한 주장을 합니다. 모든 지각 있는 존재를 평등하게 고려하라는 말과 모든 지각있는 존재에게 동등한 권리가 부여된다는 말이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리건과 싱어의 입장이 일치합니다.

이기훈 작가님은 리건은 동물과 인간을 동등하게 대하지만 싱어는 인간을 더 우대한다는 듯한 설명을 합니다.

저자(이기훈 작가)는 레건과 싱어 중 누구의 입장에 가까운가?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이고, 동물을 굉장히 사랑하지만 인간을 더 사랑한다는 점에서 싱어에 가깝다. … 결국 인간의 쾌락이 충족된 다음에야 동물의 고통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리건이나 싱어 모두 다른 근거 없이 인간을 동물과 다르게 대하는 것은 종차별이라는 점을 명확히 주장한다는 점에서 위 설명은 오해의 소지가 큽니다. 오히려 리건은 “동물의 권리, 인간의 잘못” 6장 후반부에서 본인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인권이며 동물권에 비해 인권에 더 헌신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기 바란다는 당부의 말을 남깁니다. 따라서 이기훈 작가님의 입장은 싱어보다 리건에 더 가깝습니다.

맺음말

싱어는 시혜주의나 온정주의를 비판하고 있고 최대한 이성에 호소하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인간과 동물의 완전한 평등을 주장합니다. 육식/공장식 축산/동물 실험 등 모든 형태의 동물에 대한 차별적 억압이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동물 복지의 증진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복지의 증진만으로는 종차별을 결코 철폐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피터 싱어에 비해 더 급진적 혹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입장을 갖는 것으로 소개되는 톰 리건은 사실 경우에 따라 더 온건하거나 인간중심적인 입장을 견지하기도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리건을 ‘동물권리론자’라 칭하는 것은 타당하지만(권리론에 입각한 의무론을 주장하므로), 싱어를 ‘동물복지론자’로 부르는 관점은 부적절합니다.

싱어에 대한 오해는 국내 번역서의 부적절한 번역, 일부 고등학교 교과서의 부적절한 요약, 이를 증폭시키는 일부 수능 문제집 및 강사, 리건 등의 싱어에 대한 일방적 비판 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싱어의 주장이 시혜주의적/온정주의적이라는 오해는 오롯이 국내 번역서의 번역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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