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요약입니다. 동물권 운동을 촉발시킨 초기 저작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책입니다. 국내에선 싱어의 주장이 시혜주의적이라거나 온건한 동물복지론에 그친다는 등의 여러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아서 아쉬워요.

번역에 대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고려consideration입니다. ‘동등 고려equal consideration’, ‘동등 고려의 원칙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 등 매우 자주 나오기도 하고요. 번역서에서는 1장 뿐 아니라 본문 전체에 걸쳐 “고려”와 “배려”로 섞어서 옮기고 있는데, “배려”라는 단어가 나오면 거의 모두 “고려consideration”로 바꿔 읽으세요. 그리고 “동물에게 헤택을 베풀다” 같은 시혜적 표현이 나오면 번역문에서 지나치게 의역한 것이거나 원문에는 없는데 임의로 삽입된 표현인 것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초판 서문

서문이 무려 세 개(40주년 기념판 서문, 2009년 개정판 서문, 초판 서문)나 있습니다. 이 중 초판 서문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저자는 동물권 운동을 하는 것과 동물 애호는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을 반대하는 사람이 흑인을 사랑할 필요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하고 있어요.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게 아니다. 나는 그저 동물들이 독립적이고 지각 있는 존재로 취급되길, 그리고 동물들이 인간의 목적을 위한 수단(이를테면 돼지의 살덩이를 샌드위치 재료로 소비하기)으로 취급되지 않길 원할 뿐이다.

싱어는 성차별, 인종차별 등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 아닌 동물을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이러한 차별은 우리의 언어 습관에도 뿌리깊게 박혀 있다고 지적해요. 예를 들면 동물animal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맥락에서 “인간을 제외한 동물”이라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런게 우리의 종차별적 편견을 드러내는 사례라고 말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인간과 침팬지는 챔팬지와 굴보다 훨씬 생물학적으로 가까운데, 우리는 침팬지와 굴을 “동물”로 묶어서 부르고 인간만 따로 나눠서 생각하니까요.

예전엔 “애완동물pet”이라는 말을 쓰다가 요즘엔 “반려동물companion animal”로 바꿔 쓰는데 이것도 유사한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살아있는 장난감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의미가 담긴 단어로 바꾼 것이지요.

제1장.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All Animals Are Equal

1장에서는 왜 동물 해방 운동이 필요한지 설명해요. 싱어는 “불쌍한 동물들에게 우리 인간이 혜택을 주자”는 식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대신, 인간이 현재 동물을 대하는 방식이 부당하고 차별적인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이를 위한 첫 단계로 ‘평등’의 개념을 정의합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평등이란 ‘동등한 취급equal treatment’이 아니라 ‘동등한 고려equal consideration’를 말합니다. 예를들어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임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임신중절권이란 여성에게만 보장될 수 있는 권리이므로, 여성에겐 임신중절권이 있고 남성에겐 없다고 해서 이를 차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책에 나온 비유인데, 우리나라에선 여성에게도 임신중절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어서 어색한 비유가 되어 버렸습니다. 최근 헌법불합치 판정이 난 것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인간과 동물이 완전히 똑같아야만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동등한 권리라는건 동등한 취급(예를들어 동물에게도 투표권을 보장하기)이 아니라 동등한 고려라는 주장입니다.

두번째로, 누가 누구와 평등하다는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기존에는 백인과 흑인은 피부색만 다를 뿐 아무런 근본적 차이가 없으므로 백인과 흑인이 서로 평등하다는 식의 주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싱어는 이러한 접근에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집단들 사이(인종이건 성별이건 생물학적 종이건)에 설사 크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동등하다고 주장합니다.

평등의 원칙이 담고 있는 함의는 인간들 사이의 실질적 동등함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처방(prescription)이다.

따라서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건 없건, 인종에 따른 차이가 있건 없건, 그 차이가 크건 작건 간에 평등하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이 논리에 따르면 자연스럽게 인간과 동물도 평등하다는 결론이 내려집니다. 차이가 없기 때문에 평등한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개체들을 평등하게 고려한다고 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저자는 공리주의 관점에서 어떤 존재가 고통 또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고통 또는 쾌락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통이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존재를 저자는 “지각이 있는 존재sentient being“라고 부릅니다.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어떤 개체가 고통이나 쾌락을 느낀다면, 즉 지각이 있는 존재라면, 그 개체에게는 관심사interest가 있는 것이고, 관심사가 있다면 그 관심사는 도덕적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하며, 동등한 종류의 관심사는 그 개체가 누구이건 간에 동등한 비중으로 여겨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종차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저자 자신을 포함해서 인류의 대부분은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종차별을 하고 있습니다.

싱어는 동물권 운동가로 유명하지만 엄밀하게 따지자면 그의 이론은 동물권animal rights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싱어의 주장 중 어쩌면 가장 중요하지만 종종 간과되는 면이라고 생각해요. 싱어는 동물에게건 인간에게건 태어나면서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자연권natural rights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합니다. 공리주의자인 싱어에게 있어서 ‘동물 혹은 인간에게 자연권이 존재한다’는 말은 해당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거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로 인해 이익 또는 관심사interests를 갖는다는 말을 편의상 짧게 표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싱어는 권리라는 개념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당장 동물에 대한 모든 종류의 학대를 멈춰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2장. 연구를 위한 도구Tools for Research

2장은 실험 동물이 학대 당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게 왜 문제인지, 왜 안 바뀌는지,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2장과 3장은 인간의 종차별로 인해 동물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너무나 크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인간이 동물을 얼마나 잔인하게 대하는지 드러내서 독자들에게 충격을 주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는게 아닐가 추측해봅니다. 그래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할테니까요. 2장 내용이 지나치게 잔인해서 좀 괴롭게 꾸역꾸역 읽었어요. 실험에 대한 내용은 최소한으로만 적도록 하겠습니다.

군사 목적 실험에서는 주로 원숭이, 간혹 침팬지를 쓰고요, 지속적으로 전기충격을 가해서 동물이 원하는 행동을 하도록 훈련시켜요. 몇 주의 훈련이 끝나면 본격적인 실험을 시작합니다. 본격적인 실험이란 예를 들면, 방사능이나 유독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때 훈련 받았던 행동을 얼마나 잘 유지하다가 죽는지를 측정합니다. 원숭이나 침팬지를 쓰는 이유는 진화적으로 인간과 가까운 종이기 때문입니다. 계통수 기준으로 보면 원숭이-고릴라-침팬지-보노보-인간 이런 순서로 서로 가깝거든요.

민간 분야의 실험도 잔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심리학 교과서(사회심리학, 발달심리학, 진화심리학)에서 봤던 실험들, 교양과학책에서 자주 나오는 실험들이 있어서 깜짝 놀랐어요. 구체적인 내용은 지나치게 잔인하고 슬퍼서 생략합니다. 다만, 교과서들에는 이 실험이 이렇게 잔인한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 대해 한 줄도 나와있지 않았던게 좀 충격이었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동물 실험의 규모가 엄청나게 크다는 점, 대부분의 연구가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점, 대부분의 연구자들이 실험 동물을 살아있는 생명이라기보다 단순한 도구 정도로 취급한다는 점, 그러한 연구 전통이 계속 이어진다는 점을 비판합니다.

싱어는 또 대부분의 연구가 유의미한 결론을 내지 못하고 동물만 죽이고 끝나고, 일부 결론이 나더라도 지나치게 사소하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합니다. 공리주의자인만큼 기왕 고통을 주었으면 중대한 결론을 얻었어야 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혹은 너무 사소한 이유로 지나치게 큰 고통을 주었다는 점을 비판하는걸로 보입니다.

한편, 싱어가 모든 종류의 동물 실험을 원천적으로 다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동물 실험이 정당한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것을 권합니다:

생후 6개월이고, 고아이며, 심각한 뇌 손상을 입어서 이후 정상적인 신경 발달이 도저히 불가능한 어떤 아이가 있을 때, 이 아이를 해당 동물 실험에서 쓰는 것이 정당한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경우에만 그 동물 실험은 (적어도 그 대답을 한 사람의 내적 기준에서는) 정당하다고 볼 수 있다는게 싱어가 제시하는 기준입니다. 생후 6개월인 이유는 그 정도 수준이면 다른 대형 영장류에 비해 인지적으로 더 뛰어나지도 않고, 고아인 이유는 그래야 가족들이 받는 고통을 빼고 생각할 수 있고(한편 대부분의 실험 동물은 어미로부터 강제로 격리되기 때문에 어미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준다고 해요), 치료 불가능한 심각한 뇌 손상을 가정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 아이의 미래에 가능성에 대해 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를 써서는 안되지만 동물을 쓰는건 괜찮다”고 대답한다면 그건 종차별(인간 종에 대한 특별한 취급)이라는게 싱어의 주장입니다.

이 기준에는 모호한 회색 지대가 있을텐데요, 싱어는 이 회색 지대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학대는 너무 선명한 검정색이라 회색 지대 근처에도 가지 않는게 대다수이고 이런 학대만 줄여도 세상이 크게 좋아질테니까요. 즉, 원칙적으로 모든 동물실험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실험들을 고려한다면, 현실적으로는 모든 실험이 당장 중단되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입장입니다.

2장의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납니다:

실험 동물에 대한 학대(exploitation; 보통은 착취라고 번역하는데 원래는 ‘뽑아먹기’랑 유사한 뜻이니까 이 맥락에서는 학대라고 하면 좋을 것 같아요)는 종차별이라는 더 큰 문제의 일부일 뿐이기에 종차별 자체가 사라지지 않는 한 실험 동물에 대한 학대 문제도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분명 미래의 언젠가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20세기에 실험실에서 벌어졌던 일들에 대해 읽으며, 우리가 로마 시대 검투 경기장이나 18세기 노예 무역에 대해 읽으며 느꼈던 충격을 똑같이 느끼게 될 것이다.

싱어가 사고하는 방식(공리주의에 입각하여 부당한 차별이 무엇인지 판단하기)으로 여러 종류의 차별(인종차별racism, 성차별sexism, 연령차별ageism, 종차별speciesism 등)의 적어도 일면은 일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역사적으로 이런 사회 운동들이 서로 연합할 수 있었겠구나(동물+환경+여성=에코페미니즘, 인종+여성=블랙페미니즘, 계급+페미니즘=마르크스주의페미니즘 등)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3장. 공장식 축산에서는Down on the Factory Farm

3장에서는 닭, 돼지, 송아지, 젖소, (소고기 생산용) 소의 사례를 각각 소개한 뒤에, 가축의 종류와 무관하게 일반적으로 벌어지는 학대들 - 운송 과정에서의 학대, 도축 과정에서의 학대, 뿔 제거/고환 제거/피부에 낙인 찍기 등 - 을 소개합니다. 2장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지만 3장의 사례들도 지나치게 잔혹한 것 같아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고 간단하게만 적어보겠습니다.

닭은 움직이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자거나, 알을 낳거나, 사료를 먹을 수만 있어요. 스트레스로 인해 공격성이 높아져서 다른 닭들을 부리로 공격하는데 이렇게 하면 공장 입장에서 생산성이 낮아지기 때문에 부리를 일부 제거합니다. 부리 안에는 인간으로 치면 손톱과 살 사이의 민감한 부분에 해당하는 신경 조직이 있어서 평생 고통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배설물 처리 등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바닥도 그냥 구멍 뚫린 철창살로 되어 있는데 상당수 닭들은 발이 철창살아 엉겨 붙게 된다고 해요. 돼지, 젖소, 소, 송아지 순으로 점점 더 잔혹해지는데 생략하겠습니다.

돼지나 소의 경우 운송 및 도축 과정에서 추가적인 고통을 겪습니다.

종교적인 이유(유대교와 이슬람교)에서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도축한 동물의 고기만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절시키거나 마취시키지 않고 도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이유에서 이렇게 도축된 고기 중 먹어서는 안되는 부위들이 제법 있기 때문에 이런 부위들은 (버리면 손해니까) 해당 종교와 무관하게 일반 제품으로 판매된다고 합니다.

스웨덴을 포함한 몇몇 유럽 국가들이 그나마 축산에서의 학대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미국은 입법 로비 단체들의 힘이 워낙 막강해서 법제화가 대단히 느리게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다른 나라들은 미국과 비슷하거나 심한 수준”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선 한국에서 나온 책을 따로 찾아보면 좋겠단 생각을 했습니다.

싱어는 동물의 처우에 대해 많은 분량을 들여 설명하고 있지만, 공장식 축산을 유지하면서 복지만 개선해보자는 식의 타협적 입장을 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싱어는 “인도적인 축산”도 좀 더 나아진 종차별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인도적인 축산은) 계몽적이고 더 인도적인 형태일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차별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다. 아직까지 어떤 국가의 정부도 인간의 이익에 비해 동물의 이익이 덜 중요하다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한 바 없다. 이슈는 항상 ‘피할 수 있는’ 고통에 맞춰져 있는데, 이 말은 동일한 양의 동물 제품들이 생산된다는 조건 하에, 그리고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피할 수 있는 고통으로 한정된다.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동물을 수단으로 쓸 수 있고, 동물의 살을 비롯한 인간의 각종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 동물을 기르고 죽여도 된다는 가정들은 여태 도전받은 바가 없다.

사족으로, 중간에 닭에 대한 내용에서 반가운 이름을 둘 발견해서 메모해둡니다.

첫번째는 콘라드 로렌츠라는 학자입니다, 동물행동학Ethology의 창시자이자 노벨상 수상자랍니다. 조류에서의 각인imprinting에 대한 연구가 특히 유명합니다. 아기 오리들이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는 사진을 보신 분도 계실텐데 이 사진의 남자가 로렌츠입니다.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의 스승격(스승이 아니고 스승격인 이유는 직계 스승은 니코 틴버겐Niko Tinbergen이고, 로렌츠는 틴버겐의 동료였어요)인 사람이기도 합니다. 나치 부역자였던 점은 아쉽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메리엔 도킨스인데 리차드 도킨스의 전배우자였던 학자입니다. 이 분도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옥스퍼드에서 동물행동학을 공부했어요. 이 분은 특히 이후에 동물의 의식에 대한 연구와 병행하여 동물 복지 운동을 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제4장. 채식주의자 되기Becoming a Vegetarian

4장에서는 인간 사회에 만연한 종차별에 대항하기 위한 사회 운동이자 개인적 실천 방법으로 채식주의를 제안합니다. 채식을 통해 종차별을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식량난도 해결하고 환경 문제에도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실용적인 내용도 담고 있는데, 점진적으로 채식주의자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은지, 뭘 먹어도 되고 뭘 먹으면 안되는지, 왜 되고 왜 안되는지 등을 설명해줍니다.

우선 채식주의가 효과적인 사회 운동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정치인들이 동물권 보호를 위해 여러 입법 활동을 하게끔 장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방식만으로는 어렵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동물을 착취하여 이익을 얻는 산업이 워낙 크게 발달해있고 이들이 다양한 로비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몇 거대 동물권 단체들은 인기 있는 동거 동물(개, 고양이)이나 우리가 대체로 먹지 않는 동물(북극곰, 원숭이 등)의 복지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은 금전적 동기를 줄이는 것, 즉 육식을 줄이는 것이라는 주장을 합니다.

두번째 이유는, 다른 상징적 운동과 달리 채식운동은 거시적인 면에서 실패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내가 안먹은 만큼의 생명이 겪을 고통을 줄인 것이라는 점입니다.

세번째 이유는, 멀리서 일어나는 부도덕에 대해 비판하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으니 그보다는 내 주변과 일상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 무언가를 실천하는 편이 더 어렵고 가치있는 일이라는 점이라고 말합니다. “멀리서 일어나는 부도덕”의 사례 중 하나로 한국의 개고기 식습관을 언급합니다. 다들 소/돼지/닭 먹으면서 한국인들 개고기 먹는걸 비판하는 것은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입니다. (그러므로 개고기 먹는 한국인을 비판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소/돼지/닭을 먹는 스스로를 비판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다음 주제는 공장식 축산을 없애면 식량 생산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그렇게 되면 인류의 식량난이 더 심각해지지 않느냐는 문제 제기에 대한 반론입니다. 싱어의 주장에 따르면, 식물을 인간이 직접 먹는 것에 비해서 식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를 인간이 먹는 식으로 한 단계를 더 거치게 되면 효율이 극도로 낮아지고, 그 과정에서 더 많은 물을 사용하고, 사료용 작물을 키우느라 더 많은 열대우림을 파괴하고, 공장식 축산의 폐기물(주로 배설물)로 인해 물이 더 오염된다고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인들이 육류 소비를 10%만 줄이면 6천만명이 먹을 식량을 더 생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뀨: 좀 더 상세한 최근 계산에 대해서는 채식의 에너지 효율성 글을 참고하세요)

그 다음 주제는 영양에 대한 고려입니다. 인간은 계통 분류상 잡식성 동물이니까 채식만 하면 영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대한 내용입니다. 역사적으로 간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레오 톨스토이, 조지 버나드 쇼 등이 채식을 했으나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영양학적으로는 식물을 통해 섭취하기 어려운 유일한 영양소는 비타민 B12인데 이 조차도 일부 발효 식품을 통해 섭취 가능하고 혹시 그게 어려우면 비타민 보충제를 먹으면 된다고 설명합니다.

영양에 대해서는, 사실은 육식에 비해 채식이 건강에 여러 이점을 준다고 하면서도 그런 점들에 대해서는 설명을 길게 하지 않고 ‘육식에 비해 채식도 나쁘지 않다’ 정도로만 최소한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채식의 장점을 길게 설명할수록 동물의 이익이 아니라 인간의 이익을 위해 채식을 하라는 식의 주장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점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뀨: 채식, 특히 자연식물식이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서는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요약을 참고하세요.)

마지막 주제는, 뭘 먹어야 하는지, 뭘 안먹어야 하는지, 왜 그런지에 대한 설명입니다. 기본 원칙은 1장에서 소개한 “모든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에 대한 동등한 고려의 원칙principle of equal consideration”입니다. 고통이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존재의 이익(고통을 줄이고 쾌락을 늘리기)에 대해 동등하게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생물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저자가 그은 흐릿한 선은 “새우와 굴 사이에 어딘가”라고 말해요. 그런데 이건 1판(1975년)에서의 설명이었고, 개정판(2009년)에서는 굴이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는걸 완벽하게 확실하기는 어렵고 굴을 안 먹는 일 쯤은 상대적으로 쉬우니까 어지간하면 그냥 굴도 먹지 않는게 좋겠다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건 각자 저 원칙에 기반하여 실천의 범위를 정하는 것이지 저자가 제안한 기준을 정확히 지키는게 아니라고도 말하고 있습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가이드라인의 예시는 이렇습니다: 소/닭/돼지 등 육류와 각종 생선 먹지 않기, 달걀의 경우는 방목된 농장에서 얻은 달걀만 먹고 그렇지 않으면 피하기, 우유 마시지 않기, 유제품은 되도록 피하되 피하기 어려우면 그냥 먹기(워낙 많은 제품에 우유가 들어 있어서 이걸 몽땅 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해요). 이걸 각자 사정에 따라 단계적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싱어는 도덕적 완결성을 추구하느라 현실에서의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상황을 가장 경계합니다. 그가 생각하는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이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모든 악행으로부터 완전무결 격리하여 도덕적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게 하는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즉 개별 참여자가 ‘아 나는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동물 해방 운동의 목적은 비인간 동물에 대한 부당한 억압과 이들이 겪는 고통을 현실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에 있습니다.

제5장. 인간의 정복Man’s Dominion

5장에서는 전세계 거의 모든 인간이 종차별자라고 규정하고 왜 종차별이 이렇게 만연하게 되었는지를 추적합니다. 5장을 읽으며 저자가 기독교에 굉장히 비판적이라는걸 느꼈는데, 찾아보니 역시나 무신론자였고 그냥 무신론자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그걸 감안하고 이 요약문도 읽어주세요.

싱어의 목적은 종차별에 대항해서 싸우는 동물 해방 전선animal liberation front을 장려하는 것이고, 이 책에서는 크게 두 가지 전략을 씁니다. 2장, 3장은 전면 공격(지금 행해지는 종차별의 잔혹함을 고발하기)이고, 5장은 후면 공격(종차별의 사상적/역사적 기반이 얼마나 허술한지 드러내기)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목적에서 종차별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싱어는 종차별의 역사를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기독교 이전pre-christianity, 기독교 시대, 계몽주의 시대 및 그 이후. 보통의 유럽중심주의적 역사관은 그리스 고졸기, 그리스 고전기, 로마시대, 중세시대, 르네상스, 근대, 현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데 이거랑 엮어보자면 “기독교 이전”은 고졸기/고전기에 대응되고, 기독교 시대는 로마시대/중세시대에 연결되고, 계몽주의 시대 및 그 이후는 르네상스/근대/현대에 연결되는 식입니다.

기독교 이전

종차별 관점에서 기독교 이전 시기 서양인들의 동물에 대한 태도는 두 가지 사상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는 유대교 전통,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 전통. 유대교 전통의 창조 설화(기독교 구약 창세기)에 의하면 동물은 인간을 위한 수단으로 창조되었고, 인간 남성이 동물과 여자 때문에 타락했다고 주장하며, 타락한 인간은 부끄러움을 알게되어 “동물 가죽” 옷을 입고, 추방된 인간의 자손들은 동물을 신에게 제물로 넘기고, 신은 동물을 홍수로 죽이고 유황불로 죽입니다. 저자가 보기에 유대 경전은 심각하게 종차별적입니다.

다른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사상. 고대 그리스의 사상은 (역시 종차별 관점에서) 둘로 나뉘는데 하나는 피타고라스 학파의 전통, 다른 하나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전통입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종교적 성격이 강했고(원래 수학은 신비로운 면이 있어서 수학과 종교는 의외로 잘통한다고 하지요) 특히 죽은 인간의 영혼이 동물에 깃든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물에게 자애로운 편이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은 동물이 인간과 다르다고 보았고요. 그런데 저자 입장에선 아쉽게도 플라톤-아리스테텔레스 전통이 서양 철학의 주류가 됩니다.

기독교

저자는 로마 제국의 군사주의적 문화(약자/노예/포로/동물은 무가치)와 유대교+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이 결합되면서 우리가 소위 기독교 문화라고 하는 줄기가 만들어진다고 봅니다. 로마 제국은 원래 사람과 사람,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이 싸워서 서로 죽이는걸 스포츠로 생각하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대교+아리스토텔레스 전통의 영향으로 4세기에 이르러서는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스포츠(영화 글레디에이터에 나오는)는 없어졌다고 합니다.

중세시대에 이르면 기독교 철학이 크게 발전하는데 동물권과 관련해서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아퀴나스의 윤리 체게에 의하면 죄에는 세 종류가 있습니다. 신에 대한 죄, 자신에 대한 죄, 다른 사람에 대한 죄. 문제는 이 분류에 의하면 동물에 대한 학대는 (인간과 관련이 없다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집니다. 이 사상의 영향은 정말 오래 지속되는데, 1800년대 중반 교황청의 입장문도 이 사상에 기반해서 동물권 관련 입법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교황청의 입장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에 이르러서야 변하기 시작합니다)

계몽주의 및 그 이후

중세가 끝나고 르세상스 휴머니즘이 도래하면 신 대신 인간 중심의 사유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동물권 관점에서 인본주의란 말 그대로 “사람”에 대한 것일 뿐 둥물이랑은 상관이 없으니 크게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몇몇 사람들이 눈에 띈다고 합니다. 책에 소개된 인물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입니다. 동물권을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하지요.

동물권 관점에서 이 시기에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친 사상가는 데카르트입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기계론자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인었기 때문에, 기계론과 기독교를 통합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원론(물질과 영혼)을 주장하게 되었고, 세상 만물은 기계인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신에게 부여받은 영혼을 가진다고 말하거든요. 즉, 동물은 조금 복잡한 시계에 불과합니다. 영혼이 없으면 의식이 없고 의식이 없으면 고통을 못 느끼니까 마음대로 실험을 해도 되는거죠. 이 시기부터 동물 실험이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동물실험은 잔혹했지만(살아있는 강아지의 팔과 다리를 못으로 고정하고 산 채로 해부했다고 해요. 하지만 이런 정도는 2장과 3장에 나오는 사례에 비하면 약과랍니다), 그 덕분에 “동물이 정말 기계일까? 아닌 것 같은데?” 하는 의심을 품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1859년에는 다윈의 <종의 기원> 출간됩니다. 그리고 약 10년 후 다윈은 <인간의 유래와 성선택>을 발표하고 조금 지나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를 출판해요. 이 세 책의 메시지를 합치면, 모든 현생종은 하나 혹은 소수의 종에서 시작하여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과정을 거치며 서서히 분화되었고(종의 기원), 인간도 역시 마찬가지이머(인간의 유래), 인간과 대형 영장류 사이에는 상당히 많은 유사성이 있다(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이 사상적 변화를 보통 다윈주의 혁명darwinian revolution이라고 부릅니다.

1900년대에 이르면 상당수의 대중이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근본적 차이가 없음을 적어도 이성적으로는 알게 되지만,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해온 오랜 종차별적 습관을 현실에서 없애지는 못한 채로 애매하게 지내게 되는데, 이 상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게 저자의 견해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변명의 시대”라고 부를 법 합니다.

제6장. 오늘날의 종차별Speciesism Today

6장에서는 동물권 운동에 대한 저항과, 동물권에 대한 반대 논리, 이에 대한 저자의 반론을 소개합니다.

문화와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이전에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태도를 주입하는 점을 비판합니다. 동화에 나오는 귀여운 동물이거나, 우리가 먹는 고기인거죠.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성역할을 강화하는 동화나 영화를 비판하고 다양한 여성성을 보여주는 동화를 제안하는 것과 유사하게, 동물권 운동가들도 동물들이 인간과 동등한 생명이며 지각있는 존재라는 점을 아이들이 배울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합니다.

미디어도 공장식 축산이나 동물 실험의 현황에 대해 제대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종차별주의자들의 첫번째 방어선은 ‘무지’입니다. 몰랐다고 주장하거나, 설명하려해도 듣지 않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려 애씁니다.

또다른 문제는 “사람인 우선”이라는 태도입니다. 이 태도는 그 자체로 종차별적입니다. 게다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억압은 대체로 동물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이익 충돌에서 비롯된다기 보다 인간이 동물을 수단으로 보는 태도에서 기인합니다. 에를 들어 채식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반면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기만 동물에게 가해지는 가장 큰 억압 중 하나인 공장식 축산을 효과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고상한 인간 대 잔인한 짐슴이라는 잘못된 편견도 종차별을 유지하는 동력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전쟁 등을 고려하면 인간이야말로 가장 잔인한 종 중 하나입니다. 인간은 인간의 야만성은 과소평가하고 동물의 폭력성은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또한 종차별에 불과합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은 자연의 질서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위를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자연을 운운하는 것은 현명한 전략이 아닙니다. 자연스러운 것을 모두 그대로 따른다면 비극적인 세상이 될테니까요. 예를 들어 인류 역사 상 전쟁이 없었던 시절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인간에게 있어서 전쟁은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자연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전쟁터로 달려가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본문에 명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종류의 오류를 자연주의적 오류naturalistic fallacy라고 부릅니다. 오로지 사실에 대한 명제만을 근거로 가치에 대한 명제를 도출하면 자연주의적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소를 먹기 때문에 소의 개체수가 지금과 같이 많아진 것이니 육식은 소에게 이득을 준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인간이 육식을 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나지도 못했을 소들이 태어났으니 좋은 일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에 대해 싱어의 여러 반론 중 하나가 재미있어서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이 사람의 주장대로 생명이 더 많이 태어나는게 좋은 일이라면, 기왕이면 소보다는 인간이 더 많이 태어나는 편이 좋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육식을 옹호하는 사람이므로 소보다 인간이 더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 분명하니까요. 사람이 더 많이 태어나려면 식량이 필요한데, 식량을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은 채식을 하는 것입니다. 식물을 인간이 직접 먹는 편이, 식물을 소에게 먹이고 소를 인간이 먹는 편에 비해서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최대한 관철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육식을 그만두고 채식을 해야합니다!

마지막으로 싱어는, 자신이 이 책을 쓰면서 최대한 이성에 호소하여 논리를 전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합니다.

나는 감정이나 감상보다는 이성에 호소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내가 다른 동물에 대한 친절한 마음이나 감상의 중요성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 아니라, 이성이 더 보편적이고 호소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이러한 태도는 가장 최근 저서인 <효율적 이타주의자>에서도 일관되게 유지됩니다. 싱어는 이성의 힘으로 세상을 좋아지게 만들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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