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2. 추천사 Foreward
  3. 제1장. 사랑할까 먹을까? To love or to eat?
    1. 개를 먹는다는 것의 문제
    2. 잃어버린 연결고리
    3. 공감에서 무관심으로
  4. 제2장. 육식주의: “원래 그런겁니다” Carnism: “It’s just the way things are”
    1. 육식주의
    2.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현황
    3.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폭력
  5. 제3장.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The way things really are
    1. 동물들은 어디에 있나
    2.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3. 죽음의 문 앞에서: 보행불능 동물
    4. 도살장 벽이 유리였다면
  6. 제4장. 부수적 피해: 육식주의의 다른 피해자들 Collateral damage: The other casualites of carnism
    1.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2. 감염, 검역, USDA
    3. 도축장의 인간동물
    4. 학습된 도살자
    5. 우리 행성, 우리 자신
    6. 민주정인가 육식정meatocracy인가
    7. 정부와 기업이 엮이는 방법
    8. 경고: 육식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
  7. 제5장. 육식의 신화: 육식주의의 정당화 The Mythology of Meat: Justifying Carnism
    1. 정당화의 3N
    2. 신화창조자를 소개합니다
    3. 정식 승인의 표식: 합법화
    4. 육식은 정상이다
    5. 육식은 자연스럽다
    6. 육식은 필수다
    7. 자유의지 미신
  8. 제6장. 육식거울나라의 엘리스: 내재화된 육식주의 Throught the carnistic looking glass: Internalized carnism
    1. 인지 삼중주 The cognitive trio
    2. 대상화: 동물을 물건으로 보기
    3. 비개별화: 동물을 추상적 집단으로만 여기기
    4. 이분화: 동물들이 범주로 분류된다고 간주
    5. 기술, 왜곡, 거리두기
    6. 왜곡과 역겨움
    7. 심리적 피해관리: 역겨움과 합리화
    8. 개고기 건져내기: 역겨움과 오염
    9. 매트릭스 속 매트릭스: 육식주의적 스키마
    10. 나가는 문: 육식주의적 매트릭스의 균열
  9. 제7장. 증언하기 - 육식주의에서 연민으로Bearing witness - from carnism to compassion
    1. 마음으로 보기: 목격의 힘
    2. 무관심에서 공감으로
    3. 우리의 저항을 목격하기
    4. 시대정신을 목격하기
    5. 실천하며 목격하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6. 육식주의 너머
    7. 목격을 위한 용기

개요

멜라니 조이Melanie Joy의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Why we love dogs, eat pigs, and wear cows>를 읽고 요약했어요. 2009년에 나온 책이고, 부제는 “육식주의 입문An introduction to carnism”입니다.

이 책은 수년에 걸친 프로젝트의 산물입니다. 박사 학위 주제로 시작한 연구가 확장되어 책이 되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며 “감사의 글”에서 이름을 열거하고 있는데 하지만 제가 아는 이름은 하나도 없었어요! ㅜㅜ

추천사 Foreward

(뀨: 배스킨라빈스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Irma Robbins의 아들 John Robbins의 추천사예요. 작가이자 환경/동물권 운동가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개, 고양이 등 애완동물pet을 사랑하고 가족처럼 여기지만 어떤 동물은 정찬dinner으로 여기며 학대합니다. (뀨: 2011년에 쓴 동물권 책 추천사인데 “애완동물”이라니 약간 띠용) 미국 모든 주에 동물법이 있지만 축산동물은 현저히 다르게 취급합니다. 공장식 축산에 대한 기만적 광고가 난무하고요.

이 책은 이 같은 모순과 이 모순을 합리화시키는 체계를 명쾌히 설명해요. 우리는 모든 동물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이는 동물의 권리에 대한 것일 뿐 아니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것이기도 해요. 간디는 동물의 처우를 보면 그 나라의 위대함을 알 수 있다고 말했어요. 간디가 이 책을 읽었다면 좋아했을 것입니다.

제1장. 사랑할까 먹을까? To love or to eat?

1장은 저녁 식사 자리에 대한 상상으로 시작해요. 친구에게 초대받아 저녁을 먹는 자리인데, 맛있는 스튜가 나왔어요. 친구에게 비법을 묻자 소고기가 아니라 개고기를 넣었다고 말합니다. 순간 식욕이 싹 사라지고 역겨운 느낌이 들겠죠. 친구는 곧 농담이라며, 사실은 소고기가 맞다고 말해요. 하지만 역겨움이 완전 가시진 않습니다. 고기의 종류만 소고기에서 개고기로 바뀌었을 뿐인데 어떻게 된걸까요?

개고기와 소고기에 다르게 반응하는 이유는 고기에 물리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고기에 대한 우리의 인식perception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개를 먹는다는 것의 문제

인식 변화가 이토록 강력한 이유는, 인식perception이 우리의 현실을 상당히 규정하기 때문이에요. 대상에 대한 인식이, 그 대상에 대한 생각과 느낌을 결정하고, 생각과 느낌은 다시 우리의 행동을 결정합니다. 개고기와 소고기에 대한 많은 이들의 반응이 다른 이유는 개와 소를 달리 인식하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소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먹거나 입을 때 뿐입니다. 개와의 관계는 전혀 달라요. 우리는 동거견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놀고, 함께 자고, 선물을 사주고, 아프면 병원에 데려가고, 죽으면 묻어 줍니다. 우리가 개를 사랑하고 소를 먹는 이유는 이 둘 간의 근본적 차이 때문이 아니고 인식의 차이 때문이에요.

문화 또한 우리의 인식에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힌두교도는 소고기에 대해 보이는 반응은 미국인들이 개고기에 대해 보이는 반응과 유사할거예요. 이 차이는 우리의 심리적 스키마schema 때문입니다. 스키마는 우리의 믿음, 사상, 인식, 경험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되는 심리적인 ‘틀’입니다. 스키마는 우리가 수용하는 정보를 자동으로 해석하고 조직화 합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라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은 여성을 떠올려요. 스키마가 간호사에 대한 일반화된 이미지를 형성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스키마는 정신적인 분류 체계 역할을 하며, 우리는 모든 주제에 대한 스키마를 가지고 있어요. 동물은 포식자, 피식자, 해충, 애완동물pet, 음식 등으로 분류하고, 이에 따라 우리와 이들의 관계가 결정되는 것입니다.

다른 분류들은 때때로 겹치기도 하지만, ‘고기’의 문제로 오면 대부분의 동물은 음식이거나 음식이 아닌걸로 분류됩니다. 음식이 아닌걸로 분류된 동물의 고기를 마주하면 살아있는 동물을 떠올리며 이들을 먹는다는 생각에 역겨움을 느끼게 됩니다.

인식의 흐름을 도식화하면 이래요.

이는 순환적 과정입니다. 믿음이 행동을 이끌고, 행동이 다시 믿음을 강화해요. 개를 안먹고 소를 먹는 행위가 개는 먹을 수 없고 소는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획득된 미감 (사이드)

미감엔 생득적 요소가 있으나 상당 부분은 학습의 결과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본인의 미감을 합리화하고 여기에서 벗어나면 역겹다고 여겨요. 어떤 문화권은 달걀이 닭의 난자(맞음)라며 역겨워 합니다. 우리는 캄보디아에서 타란튤라 튀김 먹는걸 역겨워 하고요.

잃어버린 연결고리

왜 우리는 많은 동물 중 일부만 먹을 수 있는 종으로 분류할까요?

먹을 수 있는 동물을 선택하는 기준은 역겨움의 부재absence of disgust라고 합니다. 연구에 의하면 역겨움의 부재는 대체로 학습된 것이라고 해요. 고도로 체계화된 어떤 믿음 체계가 “느끼지 못하게” 가르치며 그 결과 우리는 공감 능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공감에서 무관심으로

왜 공감을 막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길 원치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동물을 먹어요. 가치와 행동 사이에 불일치가 존재하는거죠. 이에 따라 도덕적 불편감이 발생해요. 이 불편감을 피하기 위한 세 가지 선택지가 있습니다

  1. 가치를 바꾸기
  2. 행동을 바꾸기
  3. 인식을 바꾸기

고기에 대한 스키마 형성은 세번째 선택지와 관련이 있어요. 스키마로 인식을 왜곡시켜 불편함을 충분히 줄이면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한 첫번째 도구는 심리적 둔감화psychic numbing입니다. 이 자체는 나쁜게 아니며 폭력적 세상을 견디고 살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요. 그러니 둔감화가 폭력을 가능케 하는 상황이라면 이는 문제적입니다.

심리적 둔감화를 가능케 하는 심리적 기제는 다양해요:

  • 부인
  • 회피
  • 일상화
  • 정당화
  • 대상화
  • 탈개별화deindividualization
  • 이분화dichotomization
  • 합리화
  • 해리dissociation

이후 장들에서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이 믿음 체계의 작동 방식을 파헤칠 것입니다.

이 체계의 일차 방어선은 비가시성invisibility입니다. 동물에 대한 학대가 감춰지기에 우리는 살아있는 동물을 떠올리지 않으면서도 육식을 할 수 있고, 키워서 죽이는 불편한 과정으로부터 안전하게 격리됩니다. 육식을 해체하는 첫 단계는 체계의 비가시성을 해체하고 이를 드러내는 것이에요.

(뀨: 캐럴 J. 애덤스는 <육식의 성정치>에서 육식엔 가부장적 태도가 담겨 있다고 말해요. 가부장적 태도란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당화, 다른 존재에 대한 대상화가 삶의 필수 요소라는 믿음, 폭력은 감춰질 수 있고 마땅히 감춰져야 한다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그 “체계”와 잘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제2장. 육식주의: “원래 그런겁니다” Carnism: “It’s just the way things are”

사람들이 개를 생각할때 떠올리는 단어는 사랑스러움, 똑똑함, 귀여움, 충성 등입니다. 하지만 돼지를 생각하면 축축함, 더러움, 멍청함, 게으름, 뚱뚱함, 못생김 등을 떠올려요.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어보면 대부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합니다. 특히 왜 돼지는 먹는지에 대해 물으면 “원래 그런거”라는 식으로 대답하곤 합니다.

우리가 육식을 하기 때문에 매년 미국에서만 100억 명의 육지 동물이 도살됩니다. 우리가 육식을 하는 최선의 이유가 “원래 그런거라서”일 뿐이라면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육식을 하는 이유는 바로 육식주의carnism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육식주의

상당수의 채식주의자는 윤리적 이유로 채식을 하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채식주의자에 대한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간혹 채식주의자 캐릭터가 나오면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을 반영하곤 해요. 윤리적인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채식주의자 또는 비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육식을 하는게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여기는 사람을 부르는 단어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이들을 육식인meat eater이라고 부르지만 이게 맞는 말일까요? 채식주의자vegetarian를 채식인plant eater이라고 부르지 않는 이유는 채식주의가 신념 체계belief system이기 때문입니다. 육식인이라는 말은 육식이 신념과 무관하다는 느낌을 주지요. 육식의 기저에 놓인 신념 체계가 가려져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감춰진 신념 체계를 육식주의carnism라고 불러요. 육식주의는 동물을 먹는게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믿는 신념 체계입니다. 육식 동물은 생물학적으로 생존을 위해 고기를 먹어야 하지만, 인간인 육식주의자carnists는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이 둘은 달라요. 육식인이나 육식 동물과 달리, 육식주의는 그저 생물학적 특성을 묘사하는 단어가 아니라 철학적 선택을 담고 있는 단어입니다.

채식주의는 눈에 띄지만, 육식주의는 눈에 띄지 않고 그게 신념이자 철학적 입장이라는 사실조차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애초에 육식주의는 왜 보이지 않는걸까요? 왜 여태 이름이 없었을까요? 육식주의는 그냥 신념 체계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며, 그 중에서도 정밀한 검토에 대한 저항성을 갖는 특별한 종류의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입니다.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현황

이데올로기는 여러 사람들이 공유하는 믿음의 집합 및 이러한 믿음에 기반한 실천을 말해요. 예를 들면 페미니즘은 여남이 마땅히 평등해야 한다는 믿음을 공유하는 이데올로기입니다. 페미니즘이나 베지테리어니즘이 이데올로기라는건 쉽게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나머지 모두”, 즉 일반적인normal 사람들의 믿음은 어디에서 오나요? 여남차별이 정당하다는 믿음, 육식이 정당하다는 믿음은? “일반적”이란건 사실 다수가 따르는 믿음과 행동에 불과해요. 과학혁명 전에는 천동설이 “일반적” 견해였고 이 견해에 대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어요. 주류적 사고라는건 너무나 널리 퍼져서 마치 상식이나 사실로 여겨지는 이데올로기일 뿐입니다. 이게 바로 육식주의에 이름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이데올로기가 견고하면 보이지 않게 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가부장제입니다. 남성성이 여성성보다 가치 있고 따라서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사회적 권력을 가진다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가부장제는 페미니스트들이 이름을 부여하기 전에도 수천년간 존재했어요.

베지테리어니즘 이데올로기는 오래 전부터 가시적이었고 이름이 있었습니다. 2,500년 전에는 피타고리아니즘으로 불렸고 19세기에 베지테리어니즘이라는 이름이 고안되었습니다. 주류에서 벗어난 이데올로기는 쉽게 눈에 띄기에 이는 당연합니다.

육식주의의 이름이 이제야 부여된 이유는 하나가 아닙니다. 견고한 이데올로기가 견고한 상태로 유지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계속 비가시성을 유지하는 것인데, 비가시성을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이름을 부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요. 이름이 없으면 말할 수 없고, 말할 수 없으면 의문을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보이지 않기에 인식할 수 없어서 이름이 부여되지 않았으면서, 또 동시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름 없는 상태를 추구했다는 뜻이에요.

육식주의, 이데올로기, 폭력

안보이는 이데올로기에는 의문을 품기 어려워요. 육식주의처럼 능동적으로 스스로를 감추는 이데올로기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특별한 종류의 이데올로기를 폭력적 이데올로기violent ideology라고 불러요. 왜냐하면 실제로 물리적 폭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체계로부터 폭력을 제거하면, 즉 동물 살해를 멈추면, 체계는 더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도축 없이는 고기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뀨: 육식주의 체계는 동물 살해에 의존하고 있으면서도 동물이나 동물의 도살 과정은 적극적으로 감춰지고 우리에겐 오직 ‘고기’만 드러납니다. 애초에 동물이 있었기에 고기가 존재할 수 있지만, 고기가 존재하기 위해선 동물이 죽고 조각나서 존재하지 않게 되어야만 하는 모순적 관계가 존재해요. 캐럴 J. 애덤스는 <육식의 성정치>에서 이러한 모순적 관계를 지칭하기 위해 부재 지시대상absent referent이라는 말을 고안했어요.)

현대의 육식주의는 육식산업이 수익을 유지하기 위해 거대한 폭력에 기반하고 있으며 너무나 폭력적이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목격하길 원치 않습니다. 사람들은 다른 지각있는 존재sentient being와 교감하기 때문이에요. 동물 애호가lovers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간은 동물이 고통 받는걸 원치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이 육식주의는 이러한 사람들이 육식을 지지하게 만들기 위한 여러 방어 장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안타고난 킬러unnatural born killer (사이드)

나폴레옹 전쟁, 미국시민전쟁, 세계1/2차대전의 기록에 따르면 군인들은 전쟁 중 적군을 죽이지 않기 위해 총을 하늘 방향으로 쏘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였다고 해요. 연구에 따르면 적군을 죽이게 만들려면 살인에 충분히 무감각해지도록 훈련이 필요하다고.

제3장. 실제로는 이렇습니다 The way things really are

당신이 평균적인 미국인이라면 매일 육식을 할 것입니다. 미국에서만 매년 100억 명의 육지동물이 도살당해요. 초당 307명입니다. 미국 축산업의 연매출은 약 $1250억입니다. (뀨: 한화 130조, 2019년 한국 국가 예산의 약 30%)

이 많은 동물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요?

동물들은 어디에 있나

거의 모든 축산 동물은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태어나서 죽기 직전까지 그 안에만 갇혀 지냅니다. 이 환경의 유일한 설계 기준은 최대한 적게 투자하고 최대한 많이 벌기이고요. 비스니스 이익 관점에서 동물 복지는 장애물입니다. 공장식 축산은 인류 역사상 가장 비인도적인 시스템입니다.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

가장 효과적인 현실 왜곡 방법은 부인denial입니다. 가장 효과적인 부인 방법은 안보이게 만드는 것이고요. 2장에서는 상징적 비가시성symbolic invisibility을 다뤘는데 이는 회피avoidance에 의해 가능해집니다. 회피는 부인의 한 형태입니다.

3장에선 실질적practical 비가시성을 다뤄요. 현실을 모르면 육식주의 방어선을 뚫을 수 없습니다. 공장은 먼 곳에 있고, 찾아가도 입장이 허용되지 않으며, 건물엔 창이 거의 없고, 트럭에도 종종 아무 표시가 없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이 체계를 볼 수 없어요. 볼 수 없도록 적극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뀨: 책에서는 돼지, 소, 닭, 칠면조 등 다양한 동물이 어떤 식으로 학대 당하고 죽어가는지 설명하는데 이 부분은 생략할게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신 분은 무료 영화 <도미니언>을 보실 것을 추천합니다.)

  • 돼지: 돼지는 개보다 지능이 뛰어나고 사회성과 친화력이 높습니다. 그런 돼지가 태어나서 도축되어 시장의 ‘상품’이 되기까지의 ‘처리’과정, 그 과정에서 겪는 수많은 고통에 대한 설명합니다.
  • 소 (식용): 마이클 폴랜Michael Pollan이 <잡식동물의 딜레마The omnivore’s dilemma>를 쓰는 과정에서 ‘수송아지 534번’의 생애를 추적한 기록을 소개하며 소가 겪는 고통을 서술해요.
  • 닭과 칠면조 (식용): 우리는 새가 멍청하다고 여기지만 연구에 따르면 새는 매우 영리하며 사회성이 높아요. (뀨: 저자가 자꾸 동물들이 영리하다고 강조하는 이유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 육식주의 정당화를 강화하기 때문입니다. 2장 참고)
  • 닭 (산란용): 숫병아리는 분쇄기에서 갈려 죽고 암병아리는 좁은 닭장에서 평생을 보내며 알을 낳아요. 유전적으로 조작되어 원래에 비해 10배나 많은 알을 낳으며 다양한 건강 문제를 겪다가 죽습니다.
  • 소 (우유생산용): 젖을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유전자 조작된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고 강제로 임신을 당해요. 낳은 아이는 수송아지이면 송아지 고기가 되고, 암송아지이면 젖소가 됩니다.
  • 송아지 (식용): 수송아지는 16~18주 정도 밖에 못살고 도축됩니다.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철분 결핍 상태로 자라다가 도축되며 전기충격기를 이용한 ‘인도적’ 도축은 높은 비율로 실패하여 큰 고통을 겪어요.
  • 어류 및 각종 해양동물 (식용): 육식주의자들은 종종 물살이는 동물이 아니라고 여겨요.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종종 ‘그럼 생선만 먹는거야?’라고 묻곤 합니다. 하지만 해양동물도 고통을 느끼고 지능이 있습니다.

트라우마의 유전학 - 돼지와 인간(사이드)

인간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돼지의 돼지스트레스증후군porcine stress syndrome은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는 것으로 보이며 둘 다 부분적으로 유전성이 있다고 합니다. 돼지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유전적 소인과 트라우마 유발적 경험 노출 여부가 모두 중요하다고.

그들은 한 조각씩 죽어간다They die piece by piece (사이드)

저자는 2001년 조비 워릭Joby Warrick의 워싱턴포스트 기고글 소개합니다. 원래 소를 먼저 죽인 후에 ‘처리’를 시작해야 하지만, 생산속도를 맞추느라 ‘대충’만 죽이는 경우가 많아요. 꼬리가 잘리고 배가 갈라지는 동안에도 살아서 비명을 지르고, 눈을 깜빡이고, 주위를 둘러본다고 합니다.

고통을 느끼는가?Can they suffer? (사이드)

18세기 공리주의자이자 동물 복지, 동성애 인정, 여성참정권 부여 등을 주장했던 제러미 벤담은 “말을 할 줄 아는가?” 등 작위적인 기준 대신 오로지 “고통을 느끼는가?”라는 기준에 따라 해당 생명을 도덕적 고려의 대상에 포함시킬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하지만 역사적으로 동물, 노예 등 피억압집단은 고통을 “덜” 느낀다는 편견도 존재해 왔습니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타자의 고통은 쉽게 무시되곤 했어요. 하지만 과학 발달로 인해 포유동물 아이의 통각 신경경로 발달에 대한 연구 등 여러 객관적 연구가 가능해졌습니다.

(뀨: 공리주의에 기반한 동물해방운동을 다룬 책으로는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 요약을 읽어주세요. 다양한 동식물이 고통을 느끼는지 또는 어떤 인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메타 연구는 다양한 동식물의 의식 경험을 읽어주세요)

죽음의 문 앞에서: 보행불능 동물

(뀨: “downer cow”의 우리말 표현은 “앉은뱅이 소”인데 부적절한 표현인 것 같아서 다른 단어nonambulatory livestock의 번역으로 대체했어요)

너무 아프거나 상처로 인해 서 있거나 걸을 수 없는 동물을 보행불능 동물이라 부릅니다.

이들은 갈고리, 쇠사슬, 불도저 등으로 끌려 도축장으로 들어가요. (미국의 경우 2004년 광우병 사태 이후 일부 보행불능 동물은 인간 식용으로 쓸 수 없게 했고, 2009년에는 모든 보행불능 동물에 적용했다고 합니다)

이 가당찮은 … 고문은 중단되어야 합니다. 오로지 우리만이 도울 수 있습니다 (사이드)

저자는 남한의 개 식용 문화(?)를 소개합니다. 남한에서는 매년 수백만 명의 개가 식용으로 도살됩니다. 2002년 영국 텔레그래프지가 식용견 학대 실상을 보도한 바 있어요. 서구인들은 소/돼지/닭을 먹으면서 남한의 개식용 문제에 대해 극심한 비판을 가합니다. 사실은 둘 다 문제인데, 인식의 차이로 인해 스스로의 문제는 보지 못하는 것.

도살장 벽이 유리였다면

폴 맥카트니 경은 만약 도살장 벽이 유리였다면 누구나 채식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진실을 알게 되면 육식을 멈출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고기는 동물의 시체라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더이상 알지 않기로 결정했을 뿐입니다.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는 이와 유사합니다. 알지 못하는 앎knowing without knowing이라는 현상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어요.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는 ‘악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암묵적 계약이 존재합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보지 말라고 말하고 우리는 고개를 돌려버리는거죠.

이와 동시에 우리는 자유로운 사상가이자 능동적 소비자이기에, 정보에 기반한 합당한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s을 내릴 자유를 원해요. 하지만 우리가 이미 어떤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는 불가능합니다. 현실을 제대로 알아야만 진정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제4장. 부수적 피해: 육식주의의 다른 피해자들 Collateral damage: The other casualites of carnism

부수적 피해자는 축산업 종사자들, 근처 오염지역 거주자들, 육류 소비자들, 납세자들입니다. 육식주의의 부수적 피해자는 다름아닌 인간들이에요. 육식주의로 인한 피해가 건강 문제, 환경 파괴, 세금으로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축산업 종사자들은 일과 중 대부분을 유독한 환경에서 쉴 틈 없이 일하며 물리적 손상, 호흡기질환, 생식계통질환, 뇌질환 등을 겪으면서도 제대로 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해요. 오염지역 거주자들은 다양한 독성 폐기물에 노출되며, 이로 인해 유산, 각종 감염증 등 질환을 겪습니다.

육식 소비자들은 본인도 모르게 다양한 오염물질을 먹고 있어요. 고기에는 각종 호르몬, 항생제, 유독성제초제, 잠재적으로 매우 위험할 수 있는 각종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이 남아 있습니다. (뀨: 조류독감, 돼지열병, 코로나바이러스 생각나요)

(뀨: 의료업계, 제약업계, 낙농업계, 축산업계 등이 정부와 어떤 식으로 결탁하는지에 대한 내부 고발은 <무엇을 먹을 것인가> 요약 중 4부를 참고하세요.)

우리는 얼마나 안전한가

1906년, Upton Sinclair의 The Jungle은 육류유통업계의 위생 및 안전문제 등을 고발합니다.

대중들이 공분하였고 이후 관련 법규들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이 법규들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오히려 생산라인의 가속화, 연방 검역 인력 부족 등으로 당시에 비해 상황이 더 악화되었을 뿐입니다.

감염, 검역, USDA

1906 당시 입법에 의하면 USDA 검역관이 동물의 위생 등을 검사해야만 했어요.

하지만 1980년대 ‘개정’으로 인해 이 과정을 축산업자가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정해진 품질 관리 표준도 지나치게 엉성하다고 합니다. 도둑에게 지갑을 맡긴 격입니다.

(뀨: 영어 표현으로는 ‘여우에게 닭을 맡긴 격’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요. 우리말로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으로 옮기면 좋을텐데 ‘인간이 먹을 닭/물살이를 동물이 뺏어먹도록 놔둔다는 뜻이기 때문에 영어 표현이나 우리말 표현이나 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고쳤어요. 난나님 감사합니다)

도축장의 인간동물

도축장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상당수는 등록되지 않은 라틴 아메리카 및 아시아계 이민자입니다. 훈련을 거의 받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요.

도축장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아직 죽지 않은 상태로 도살을 당하는 동물의 발에 맞아 이빨이 깨지는 경우가 많아서, 하키 마스크를 쓰고 일을 한다고 해요.

학습된 도살자

작업자들은 악랄하기에 도축장에서 일하는게 아니라, 도축장에서 일한 결과 폭력에 무뎌지는 것입니다.

동물권 활동가들에 의해 폭로된 작업자들의 폭력적 행위는 이들이 악마임을 보여주는게 아니라, 이들이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 행성, 우리 자신

관련 업계 종사자가 아니더라도 육식주의의 폐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축산업은 모든 심각한 환경파괴의 주요 원인이에요:

  • 공기과 물 오염
  • 생명다양성 파괴
  • 토양오염
  • 산림파괴
  • 온실가스방출
  • 식수고갈

민주정인가 육식정meatocracy인가

폭력적 이데올로기는 기만, 기밀, 권력의 집중, 강압 등에 의해 유지되기에, 자유로운 사회와는 본질적으로 호환될 수 없습니다. 국가 등 상위 체제가 민주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안에 폭력적 이데올로기를 품고 있는 한 그럴 수 없습니다.

민주정체에서 정부의 역할은 시민의 이익을 위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이에요. 그러나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면 민주주의는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미국의 축산업은 소수의 기업이 과점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1250억에 이릅니다. 축산업계 자본가들의 권력은 정부와 밀접하게 엮여 있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엮이는 방법

정부와 기업이 엮이는 방법은 다양해요.

  1. 회전문 인사, 즉 정부 관료와 기업 경영진의 자리 바꾸기
  2. 기업의 정치 자금 지원 및 입법 로비. 이들은 법 위에 있을 뿐 아니라, 법을 입맛대로 만들고 있어요. (뀨: 법 위에 있다는 말은 어겨도 무사하다는 뜻, 법을 바꾼다는 말은 법을 어길 일 조차 없다는 뜻)

경고: 육식은 건강에 해로울 수 있음

담배 포장지에는 건강 경고 문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담배에 비해 육식이 훨씬 해로움에도 불구하고 육류 포장에는 아무 경고가 없어요. 핫도그를 샀는데 포장지에 이런 경고가 써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경고: 육식은 심장 질환 사망 확률을 50%, 결장암 위험을 300% (중략) 높입니다.

제5장. 육식의 신화: 육식주의의 정당화 The Mythology of Meat: Justifying Carnism

폭력적 이데올로기의 주요한 특징 하나는 비가시성입니다. 3장과 4장에서 기호적/실체적 측면을 드러냈는다면 5장에서는 육식의 현실reality을 신화mythology로 대체하는 정당화에 대해 설명합니다.

체험식 동물원petting zoo에 가면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동물과 교감하길 원하며 동물들도 인간에게 다가와 교감해요(뀨: 꼭 체험식 동물원을 예로 들었어야 했는지 의문이에요). 동물과 교감하려는 욕구는 거의 본능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육식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해요. 이 공감능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정당화의 3N

본능을 거스르며 육식을 하려면 완전한 정당화가 필요합니다. 정당화를 위한 미신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를 “육식 정당화의 3N”이라고 부릅니다.

  • 육식은 정상적normal
  • 육식은 자연적natural
  • 육식은 필수적necessary

이 정당화 방법은 노예제, 홀로코스트 등 모든 착취적 체계 정당화에 쓰여 왔습니다.

(뀨: <비건 세상 만들기>에서는 여기에 좋음nice을 추가해서 4N으로 불러요. ‘비건 세상 만들기’ 요약 중 1장 참고)

3N은 이데올로기가 잘 작동하는 동안엔 전혀 의심을 받지 않으나 시스템이 붕괴된 후 돌아보면 우스꽝스럽게 느껴져요. 예를 들어 1900년대 초반에 있었던 여성 투표권에 대한 논의가 그렇습니다. 남성 의원들은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주는게 처음 미국에 정착한 선조들의 의도이고 (여성이 투표를 하면) 국가에 회복불가능한 손상이 야기되며 …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뀨: 이 내용 너무 비웃겨서 좀 찾아봤는데 출처는 1900년대 초반 미네소타 하원 속기록이에요.

한 법관은 남성만 투표권을 갖는 것이 “선조들의 설계”라고 주장했고, 토마스 걸링Thomas Girling 의원은 “여성은 더러운 정치에 끌려 들어와선 안된다”며, 그랬다가는 “국가에 회복 불가능한 손상이 가해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제가 이해한게 맞다면, 보호 받아야만 하는 “깨끗한” 여성이 정치에 참여하면 더렵혀지는데, 더럽혀지는건 여성의 손상이 아니라 국가의 손상이라는 말인거예요. 여성을 물건으로 여기는 관점이 이중으로 드러납니다.

다른 의원은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면 “국가가 재앙에 빠지고 몰락할 것”이라고 단언해요. 왜냐하면 여성 참정권을 인정하면 여성이 정부를 이끌게 될 것이 확실한데 그 이유는 “남성은 결코 여성의 아첨blandishments을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해요. 그러니 여성은 참정권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공적인 일을 대신 할 수 있는 다른 남성에게 붙어서attach” 권리를 행사하면 된다고 주장합니다. 출처

공부 많이 하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신분 높은 아저씨들이, 의회에서 점잖게 빼입고 앉아서 이런 헛소리를 진지하게 나누고 있었던거…)

3N은 우리의 사회적 의식에 깊게 파고들었기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리의 행동을 유도합니다. 3N은 정신적/정서적인 눈가리개로 작용해요. 우리의 믿음과 행동 사이의 간극을 감춰주며, 행여 우리가 이 간극을 발견하더라도 3N이 간극이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해서 치워버립니다.

신화창조자를 소개합니다

거짓이 우리의 심리적/정서적 안전망을 형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가리려면 지속적으로 에너지가 투입되어야 합니다. 사회 구석구석에서 3N을 강화하는 정보를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주입하는 것 ‘신화창조자들’이 존재해요.

신화창조자는 사회의 기둥을 이루는 시스템이자 시스템을 대표하는 사람들을 말해요. 의료/보건/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협회와 전문가들입니다. 몇몇은 합리적 중도 시늉을 하며, 우리의 당연한 주장을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주장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해요. 예를 들면 공장식 축산을 비판하면서도 육식은 계속하는 수의사 등.

(뀨: 이 기사에 소개된 전문가들이 전형적인 신화창조자라고 생각해요. 우유자조금관리위원회는 “송아지의 건강과 이유에 따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기이유”를 하며 이는 동물 복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송아지가 수컷이면 곧 죽어서 송아지 고기가 될 것이며, 암컷이면 평생 강제 임신을 당하고 출산한 송아지는 빼앗기고 인간을 위해 젖을 생산하다가 죽어서 고기가 될 것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요. 같은 기사에서 건국대 동물’자원’학과의 이홍규 교수는 젖소 암컷의 경우 수컷과의 직접적인 교미로 인해 각종 질병에 걸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에 ‘동물의 복지’ 차원에서 강제 임신을 시킨다고 주장하며, “최근 일부 동물복지 단체에서 인공수정의 부정적인 기능만 부각해 동물학대로 단정 짓고 있는 경우가 있다”고 말합니다.)

전문가들이 폭력적 이데올로기 유지를 돕는 또다른 방법은 이데올로기 반대를 병리적 현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육식 반대를 “섭식장애로 인한 증상”으로 규정하거나 (잘 알려진 근거와 상반되게) 육류 없는 식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이들도 육식주의 시스템 내에서 자라고 영향받은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축산업 관계자 등 일부는 능동적/의도적으로 신화창조에 가담해요. 예를 들어 미국영양학협회ADA와 전미유업위원회NDC 사이의 연합이 그렇습니다. ADA는 영양학 학위를 주는 대학 인가를 담당하는 기관인데, NDC는 ADA의 선두 기업 스폰서입니다.

신화창조자의 주 역할은 창조보다는 전승되는 신화의 유지에 있어요. 현재 통용되고 있는 육식 신화 중 상당수는 예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 체계는 마치 벌 군집과도 유사해요. 개별 벌들이 죽더라도 전체 군집은 계속 유지되는거죠.

권위를 의심하기 (사이드)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의 고전적 권위에의 복종 실험 소개합니다. 남성 피험자 40명이 “선생” 역할을 하고 “전문가”의 지시에 따라 “학생” 연기를 하는 사람에게 전기 자극을 가해요. “선생”은 그 전기 자극이 진짜라고 믿지만 사실은 “학생”이 연기를 하는거예요. 대부분의 피험자는 괴로워하면서도 “전문가”의 지시대로 극심한 (가짜) 전기 자극을 가합니다. 두 가지 예외적 요인도 있었다고 해요. 1) “전문가”가 전문가처럼 여겨지지 않으면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2) “전문가”가 같은 방에 없으면 전문가를 속이고 전기 충격을 가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인 “거실”에 놓인 TV에 “전문가”가 나와서 “우유가 좋다”고 말하면 거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뜻이기도 해요.

(뀨: 아쉽게도 밀그램의 실험은 다른 많은 심리학 실험들과 함께 재현성 의심을 받고 있어요. 예를 들어 Gina Perry는 밀그램이 데이터를 조작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정식 승인의 표식: 합법화

모든 미신의 실질적 목표는 체계의 합법화입니다. 이데올로기가 합법화되면 3N은 모든 사회 조직에 의해 보호되고 모든 채널을 통해 뿌리내려져요. 이데올로기에 따른 행동이 합법적이고 합리적이고 윤리적이게 여겨지며 이에 벗어나는 행위는 비합법적으로 간주되고요.

이데올로기의 합법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두 주체는 사법체계와 뉴스 미디어입니다.

  1. 법제화: 이데올로기를 법제화하여 강제로 따르게 만들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습니다. 미국 법에 따르면 존재는 법적 개인person이거나 재산property이고, 개인에겐 권리가 있으나 재산에는 권리가 없어요. 동물에게는 법적 개인성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뀨: 동물에게 법적 권리를 부여하기 위한 입법 운동이 있어요. 동물권리장전 로즈법 참고)
  2. 뉴스 미디어: 육식주의의 비가시성을 유지하고 육식의 정당화를 강화시키기 위해 뉴스 미디어를 활용해요. 미디어가 비가시성을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는 생략omission입니다. 미디어는 도축에 대해 말하지 않아요. 또다른 방법은 금지prohibition입니다. 예를 들어 2004년 CBS는 PETA의 광고가 내규에 위배된다며 거부한 바 있습니다.

간혹 미디어에 실상이 노출되는 경우가 있으나, 이 때에도 극히 일부의 예외처럼 취급되곤 합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에서의 학대는 예외가 아니라 일상이지요. 뉴스 미디어는 3N 메시지를 우리집 안방에 배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육식은 정상이다

이데올로기의 교리tenet를 정상으로 간주하면 이데올로기도 정상화되며 이에 따라 교리는 더이상 교리가 아니라 일상적인 사회 규범이 됩니다. 사회 규범은 단순한 기술description이 아니라 규정prescription이 되며,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지시하는 힘을 가져요.

규범은 정해진 길을 따르게 만드는 효과가 있어요. 규범을 따르는 길은 가장 저항이 적은 길이기 때문입니다. 규범은 또한 순응하는 이에게 보상을 하고 규범에서 벗어나는 이를 처벌합니다. 육식은 비육식에 비해 실질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쉽습니다.

육식은 자연스럽다

우리는 인간이 수백만년간 동물을 사냥해서 먹어왔기 때문에 육식이 자연스럽다고 믿습니다. 비록 수렵채집기 인간의 주식은 채식이었지만 육식을 간혹 해왔다는 점 자체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유아살해, 살인, 강간, 식인 등도 “자연스럽다”는 점 또한 사실입니다. 즉, 자연스러움과 정당함은 별개입니다.

“자연스럽다”를 “정당하다”로 바꾸는 과정을 자연화naturalization라고 부릅니다. 어떤 교리가 자연화 과정을 거치면 해당 교리는 자연의 법칙(또는 신의 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자연화를 지원하는 세 개의 분야는 역사, 종교, 과학입니다.

  • 역사는 선택적 “사실”을 제공하여 이데올로기가 과거로부터 존재했음을 입증해요.
  • 종교는 이데올로기에 신성성을 부여합니다.
  • 과학은 이데올로기에 생물학적 기반을 부여합니다.

(뀨: 존재와 당위의 구분을 흄의 기요틴Hume’s guillotine이라고 불러요. 사람들이 흄의 기요틴을 인식하지 못해서 ‘자연스러움’과 ‘정당함’을 혼동하는 점을 악용하는 것이 문제이지, 역사/종교/과학이 그 자체로 문제라는 뜻은 아닐거예요.)

육식은 필수다

이 믿음은 육식은 자연스럽다는 믿음과 연결됩니다.

육식이 자연스럽다면 이는 곧 육식없이는 살 수 없다는 생물학적 명령처럼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이는 모든 폭력적 이데올로기에 담긴 패러독스이기도 해요: “대의를 위해서는 살생이 필요하다. 한 집단이 살려면 다른 집단이 죽어야 한다.”

자유의지 미신

대부분의 미국인은 동물에게 위해를 가하길 거부합니다. 따라서 육식의 실천은 강압을 필요로 합니다. 강압이 작동하려면 강압이 아닌척 해야하며, 마치 각자가 자유의지에 의해 행동한다고 믿게 만드는게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되기 훨씬 전부터 부모와 주변 환경으로 인해 육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번도 중단되지 않고 지속되어 왔고요. 바로 이게 육식주의가 우리의 자유의지를 빼앗는 방법입니다.

체계 안에서는 오로지 육식주의의 눈으로만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실상을 파악하려면 체계 밖에서 체계를 바라봐야만 합니다.

제6장. 육식거울나라의 엘리스: 내재화된 육식주의 Throught the carnistic looking glass: Internalized carnism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화 메트릭스와 유사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육식주의의 메트릭스에 갇혀 있어요. 원하는대로 사는게 아니라 육식주의의 강압에 따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능동적 시민이 아니라 수동적 소비자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육식주의를 내재화 하였습니다.

인지 삼중주 The cognitive trio

육식주의는 돼지를 생명이 아닌 사물로 보고, 개체가 아닌 추상 집단으로 보고, 먹을 것으로 여기도록 현실을 왜곡합니다. 이 과정에 육식주의적으로 왜곡된 인지 삼중주가 조화롭게 작용함. 인지 삼중주란 대상화objectification, 비개별화deindivisualization, 이분화dichotomization의 조화를 말합니다.

대상화: 동물을 물건으로 보기

대상화의 한 방법은 언어입니다. 그he/그녀she 대신 그것it으로, 소 내신 소고기, 누군가someone 대신 무엇가something로 부르는거죠. 또다른 방법은 제도/법제화/정책입니다. 동물을 재산으로 취급하여(5장) 사고팝니다.

우리는 대상화를 통해 육식이 주는 도덕적 불편감을 제거해요.

비개별화: 동물을 추상적 집단으로만 여기기

비개별화는 개별 동물을 추상화하고 집단에 속한 모든 개체들이 동일한 특성을 갖는다고 간주해버리는 과정을 말해요. 집단 정체성을 생각하는 게 그 자체로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오로지” 집단으로만 여기는 점이 문제입니다.

(뀨: 어떤 정치인이 무슨 잘못을 했을 때, 그 사람이 남성이면 “앞으로 남성은 안뽑겠다”고 말하지 않는데 유독 여성이면 “여성은 안뽑겠다”고 말하는건 여성을 비개별화하기 때문입니다. 범죄자가 마침 트랜스젠더일때, 이민자일때, 흑인일 때 혐오자들의 보이는 반응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분화: 동물들이 범주로 분류된다고 간주

이분화는 존재를 두개의 서로 대립되는 범주로 나누는 심적 과정이에요. 범주화 자체는 문제가 아니나 이분법은 세상에 대한 흑백논리적 관점을 만들기에 문제적입니다. 이분법적 사고는 부정확한 근거에 기반하여 세상을 경직되게 나누고, 양자에 다른 가치를 부여해요.

(뀨: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 대상을 강제로 이분법적으로 나누는걸 ‘잘못된 이분법’이라고 말하고 이 둘이 서로 대립한다고 보는 관점을 ‘이항대립’이라고 말해요. 성별이분법, 흑인-백인, 장애인-“정상인” 이분법 등으로 인간을 범주화하고 이를 대립관계로 설정하는 관점들은 모든 혐오의 논리를 관통하는 공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동물을 나누는 범주가 실제로 정확한지 여부 보다는 ‘정확하다는 믿음’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이분화의 목적은 충분한 거리를 만들어 불편함 없이 먹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분화는 육식 정당화를 돕습니다.

(뀨: 트랜스젠더 등 다른 소수자에 대한 이분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심리적으로 안전하게 비난할 수 있는 거리를 확보하는게 중요하니까요. 염색체 등 본인이 ‘채택한’ 범주화의 기준이 실제로 정확한지 여부는 중요치 않아요. 하지만 정확하다는 믿음이 중요하기에 믿음을 수정하려 하지 않는 것으로 보여요.)

기술, 왜곡, 거리두기

인지 삼중주를 말할 때 기술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기술이 심리적 왜곡과 거리두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어주기에 우리의 믿음과 행동 사이의 간극은 어느 때보다 더 깊어집니다.

왜곡과 역겨움

인지 삼중주는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왜곡하여 그들을 식별identifying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식별이란 내 안의 무언가를 그들에게서 발견하거나, 그들 안의 무언가를 내게서 발견하는 것을 말해요. 상대를 대상화/추상화하면 식별 과정이 어려워지며 이에 따라 공감도 어렵게 됩니다.

식별을 통해 상대와 나의 공통점을 찾을수록 더 많이 공감할 수 있게 되고, 더 공감하는만큼 동물을 먹는다는 발상에 대한 역겨움도 커지는거죠. (뀨: ‘공통점이 많으면 공감하기가 수월해진다’는 의미로 이해해야지, ‘공통점 적으면 공감할 필요가 없다’ 또는 ‘공감할 수 없다’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부정의에 대한 역겨움 (사이드)

최근 연구(Tsouderos)에 따르면 음식 등으로 인해 느끼는 역겨움과 부정의를 목격했을 때 느끼는 도덕적 역겨움 사이에 관련성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해요. 예를 들면 안면 근육(levator labii)의 움직임이 동일하다고 합니다.

심리적 피해관리: 역겨움과 합리화

여러 방어선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 다 뚫고 역겨움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인간은 이때 합리화를 시도한다고 합니다.

합리화란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에 합리적 설명을 시도하는 심적 과정을 말해요. 합리화가 잘 작동하는 이유는 육식주의의 작동 방식이 애초에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report하기보단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즉, 체제가 근본적으로 비합리적이기에 합리화가 쉽게 작동한다고 말합니다.

개고기 건져내기: 역겨움과 오염

역겨움이라는 감정에는 특별한 심리적 특성이 있어요. 바로 오염이라는 개념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수프에 파리가 빠지면 아무리 빠르게 건져내고 빠졌던 부분을 덜어내도 전체 수프가 역겹게 여겨지곤 합니다. 오염되었다고 여기기 때문이에요.

어쩌면 1장에서의 개고기 스튜 상황도 이와 유사할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스튜에 담긴 고기가 소고기가 아니라 개고기였다는 생각을 잠시 하는 것만으로도 스튜가 회복불가능하게 오염된 것으로 여겨지는거예요. 이 오염은 파리와 달리 실질적 오염이 아니라 ‘상상적’ 오염입니다. 역겨움엔 이처럼 관념적인 특성이 있다고 합니다.

매트릭스 속 매트릭스: 육식주의적 스키마

육식주의는 사회적 체계인 동시에 심리적 체계이기도 합니다. 이 심리적 체계는 사회적 육식주의 매트릭스 안에 놓인 내부 매트릭스이고요. 저자는 이를 육식주의적 스키마the carnistic schema라고 부릅니다. 육식주의적 스키마는 인지적 삼중주를 비롯하여 이 책에서 다루는 여러 장치로 구성됩니다.

앞에서 스키마는 수용된 정보를 자동으로 분류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스키마는 그저 수용된 정보를 분류할 뿐 아니라, 애초에 어떤 정보를 수용할 것인지에도 영향를 주는 일종의 거름망이기도 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불러요. 스키마에 부합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이에 부합하지 않는 정보는 걸러내는거죠.

(뀨: 트위터 등 SNS는 내가 팔로우하는 사람의 정보가 주로 들어오기 때문에 이미 존재하는 확증 편향을 더욱 증강시키기도 해요. 특히 페이스북과 유튜브는 “내가 좋아할” 정보를 인공지능이 “추천”해주기 때문에 더욱 위험해요.)

육식주의적 스키마로 인해 우리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나 생각을 문제없이 수용합니다. 예를 들면 돼지가 숯불 위에서 즐겁게 춤을 추며 날 먹으라고 말하는 광고나, 육식주의자들이 비건음식의 미묘한 맛과 질감 차이를 기가막히게 감별해내고 맛이 없다고 투덜대는 것 등이 그렇습니다.

(뀨: 저는 오히려 비건지향 후 전에 비해 후각과 미각이 더 발달했고 더 많은 식재료와 향신료를 구분할 수 있게 됐어요. 논-비건 식사의 강하고 역한 맛은 오히려 후각과 미각을 둔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가는 문: 육식주의적 매트릭스의 균열

영화 매트릭스에서 모피우스는 니오에게 이렇게 말해요.

나는 너의 마음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저 문을 보여줄 수 밖에 없다. 문을 열고 걸어 나가는건 너의 몫이다.

저자는 우리의 상황도 마찬가지라고 말해요. 당신은 뭔가 잘못된걸 느꼈기에 이 책을 읽고 있습니다. 이 책의 역할은 문을 보여주는 것이고, 이 문을 열고 육식주의의 메트릭스 밖으로 걸어 나가는건 우리의 몫입니다.

제7장. 증언하기 - 육식주의에서 연민으로Bearing witness - from carnism to compassion

7장은 Helmut Kaplan을 인용하며 시작해요.

우리의 손녀손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 할머니/할아버지는 동물 대학살 시대에 어디에 있었어요? 끔찍한 범죄를 막기 위해 뭘 했어요? 이번에도 몰랐다는 소린 하지 마세요.

저자는 도축장에 끌려 들어가려고 줄을 서 있다가 도축되기 직전에 극적으로 도망친 소 에밀리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1995년 11월의 일이라고 해요. 직원들은 분실한 ‘재산’을 찾으려 애썼으나, 주민들은 에밀리를 몰래 숨겨주고 경찰에게 거짓정보를 흘리며 보호했어요. 이 소식을 들은 도축장 사장은 감동을 받아 마음을 고쳐먹고 에밀리를 $1에 넘겼어요. 에밀리는 이후 생추어리에서 살다가 10세에 암으로 사망합니다.

도망치기 전 에밀리는 익명의 소 한 명이었지만 이제 그녀의 이야기는 전세계에 알려졌고 오늘날까지도 육식주의가 감춰온 진실들 - 불필요한 폭력들, 인간들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 - 알리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에밀리 동상은 ‘목격하기’의 신성함을 알리는 상징이라고 말해요.

마음으로 보기: 목격의 힘

저자는 에밀리의 경험을 상상해 보았다고 합니다. 어두운 공장, 무기력하고 겁에 질린 수많은 다른 소들. ‘목격한다’는건 그저 객관적으로 관찰하는게 아니라 마음으로 연결되고 공감하는 것을 말해요.

목격을 통해 우리는 육식주의가 만들어낸 마음 속 간극을 좁힐 수 있게 됩니다. 이 간극이 바로 우리의 공감을 막고 육식의 역겨움을 못 느끼게 만드는 장치이기에 목격하기는 중요합니다. 목격을 통해 체계가 감추고자 하는 모든 진실을 실제로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 있어요.

개인의 목격이 개인의 인지적 틈을 줄인다면 집단의 목격은 사회적 의식을 바꿔내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정의 운동justice movements의 목적은 집단적 목격을 통해 사회적 실천이 우리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도록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목격자의 수가 임계치critical mass를 넘을 때 그 사회 운동은 성공합니다. 대중적 목격이 육식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기에 전체 체계는 이를 막기 위해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목격에는 여러 형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 시위
  • 비질
  • 현수막
  • 강연
  • 예술 활동

한국에서는 서울 애니멀 세이브에서 비질 활동을 하고, 직접행동DxE의 한국 챕터에서 시위, 강연 등의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보살핌 본능? Wired to care? (사이드)

최근 연구에 의하면 공감에는 생물학적 기반이 존재한다고 해요. 다른 이의 행동을 보기만 해도 우리가 해당 행위를 수행하는 것과 유사하게 반응하는 거울 뉴런의 존재가 밝혀졌어요. 우리는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어느 정도는 문자 그대로 타인과 같은걸 느낀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발견의 함의가 매우 중대하다고 말해요. 공감이 뇌에 고정배선되어 있다면, 즉 자동 반응이라면, 타인에게 공감을 하는게 기본 상태이고 공감의 부재가 본능적 충동을 억제하고 있는 상태라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육식주의의 방어막은 어쩌면 인간 본성에 반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뀨: 이 논증은 조금 더 다듬어지면 좋겠단 생각이 들어요. 거울 뉴런이 밝혀지기 전에도 공감이 신경생리학적 기반을 가질 것이라는걸 의심한 학자는 없었고, 거울 뉴런의 존재 유무와 이것의 고정 배선 여부는 별개이고, 고정 배선 여부와 자동 반응 여부도 별개이고, 자동 반응이 본성을 뜻하지도 않습니다.)

무관심에서 공감으로

모든 폭력적 체계는 대중의 목격에 의해 위협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체계의 생존은 정확히 ‘대중 목격’의 반대 작용인 대중 해리mass dissociation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해리란 진실된 경험으로부터 심리적/정서적으로 분리된 상태이며 스스로 완전하게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하는 상태를 말해요.

폭력 피해자인 경우 등, 해리는 때로 적응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폭력의 가해자 또는 폭력의 묵인자인 경우 등, 때론 비적응적maladaptive이기도 합니다. 육식주의 체계에서 해리는 대중이 도축을 용인하도록 도와주는 비적응적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비적응적 해리로 인한 피해자는 동물 뿐 아니라 인간이기도 해요. 해리는 개인의 심적 성장을 막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저항을 목격하기

목격하기에는 변혁적 힘이 있지만 많은 이들은 육식주의 현실을 목격하고 증언하길 주저하곤 합니다. 이 저항을 극복하려면 그 근원을 이해해야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저항을 목격해야 합니다.

저자는 저항에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말해요.

  1. 체제에 순응하는게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며(5장), 목격하기란 이 길에서 벗어나는 것
  2. 감춰진 진실을 목격하는건 상처받는 일
  3. 거대한 고통 앞에서 무력함을 느낌. 하지만 동시에 목격하기는 즉각적 변화를 야기한다는 점에서 힘을 북돋아주는 행위이기도.
  4.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연에서 인간이 갖는 지배적 위치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품게 만들기 때문. 하지만 목격하기는 궁극적으로 해방liberating이다. 우리가 세상과 얽힌 일부임을 자각하는 일이기에.

(뀨: 감춰진 진실을 목격하는건 상처받는 일이라는 글을 읽고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나서 인용합니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안다는 것,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삭제된 역사를 알게 된다는 것은, 무지로 인해 보호받아 온 자신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 사회에 대한 분노, 소통의 절망 때문에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모든 사회 정의 운동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요.)

목격하기에는 패러독스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기를 주저하는 그 이유란 사실 우리가 목격하기를 갈망하는 이유와 같기 때문이에요. 그 이유란 바로 우리가 그들을 신경 쓴다는 사실because we care입니다. 우리는 신경 씁니다. 이게 바로 가장 위대한 진실입니다.

시대정신을 목격하기

여전히 육식주의가 만연한 세상이지만, 체제가 곧 붕괴할 것임을 믿을만한 근거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이 마지막 일격의 때라고 해요. 근거들은 이렇습니다.

  1. 환경 위기에 대한 인식 증가
  2. 동물 복지에 대한 우려 증가
  3. 채식주의에 대한 신뢰와 인기 증가
  4. 육식주의와 채식주의 모두에 대한 엄청난 정보들

특히 인터넷으로 인한 정보의 증가는 육식주의에게 매우 치명적입니다. 육식주의는 마치 오즈의 마법사와 같기 때문이에요. 육식주의의 힘은 오직 장막 뒤에 숨어 있기에 작용할 수 있으며, 장막을 걷어내면 그 힘 또한 사실상 사라질 것입니다.

위협은 실재합니다. 위협이 당면해 있습니다. 잠재적 영향 또한 막대합니다 - 식품마케팅협회/미국육류협회의 컨퍼런스의 “동물 복지와 동물권운동”이라는 제목의 슬라이드 중

(뀨: <비건 세상 만들기> 2장에서도 상대방의 반응을 보면 우리의 전략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유추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와요. 예를 들면 “고기 안 먹는 월요일” 운동의 효과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이 운동에 대한 고기이해관계자의 반응을 살피는 것입니다. 미국의 전미소고기협회 대변인은 “<고기 안먹는 월요일> 운동은 고기가 나쁘다는 인식을 심어서 대중이 극단적인 비거니즘을 수용하게 만들기 위한 사악한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해요.)

실천하며 목격하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실천을 시작할 때 중요한 세 가지 단계를 소개합니다.

  1. 동물 생산품의 소비를 없애거나 줄이기
  2. 관련 단체 지원하기
  3. 스스로와 주변에 지속적으로 알리기. 즉, 목격하기를 스스로의 신조credo로 만들 것

육식주의 너머

육식주의를 지탱하는 메커니즘들은 육식주의에만 쓰이는게 아닙니다. 모든 폭력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어요. 따라서 육식주의의 이해는 다른 지배 이데올로기의 이해와 저항에도 도움을 줄 것입니다. 모든 사례에서, 폭력은 부인되거나 정당화되거나 왜곡됩니다.

목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격이란 분리된 실천이 아니라 각 개인을 세상과 연결하는 행위입니다. 우리의 목격 능력에는 제한이 없다고 해요. 더 많이 목격할수록 더 잘 목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연민과 마찬가지로 목격 또한 연습을 통해 향상될 수 있습니다.

(뀨: 모든 폭력적인 지배 이데올로기는 동일한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 동물권 관련 책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통찰입니다.

  • <육식의 성정치>에서는 동물에 대한 억압과 여성에 대한 억압은 모두 가부장제의 세 가지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고 말해요: 1) 목적에 따른 수단의 정당화, 2) 다른 존재에 대한 대상화가 삶의 필수 요소라는 믿음, 3) 폭력은 감춰질 수 있고 마땅히 감춰져야 한다는 믿음
  • <동물해방>에서는 성차별, 종차별,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모두 동일한 원리로 설명해요.

비거니즘과 페미니즘의 연합이 강력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목격을 위한 용기

목격은 마음을 열고 타자의 고통을 인식하는 행위입니다. 목격엔 용기가 필요해요. 육식주의를 따르는 것은 어떤 점에서는, 죽음을 기다리며 도살장 앞에 줄 서있던 에밀리와 비슷하기도 합니다. 이 길에서 벗어나서 목격하고 증언을 하는 것은 에밀리가 도살장에서 탈출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한 것과 비슷하고요.

목격하기는 인간이 가진 좋은 면들(신념,정직, 공감, 연민)을 끌어내는 행위라고 합니다. 저자는 모든 인간이 스스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다고 믿기에 이 책을 썼다고 해요.

목격하고 증언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한쪽 편에 설 용기를 요합니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인 Elie Wiesel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중립은 억압자를 도울 뿐 결코 피해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괴롭히는 자를 응원할 뿐 결코 괴롭힘 당하는 자를 돕지 않는다.

(끝!)